심리학자나 정신건강의학 전문의가 자주 겪는 사례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아내(혹은 남편)를 무시하고 괴롭히는 남편(혹은 아내)이지만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 이들은 무능하고 무
심리학자나 정신건강의학 전문의가 자주 겪는 사례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아내(혹은 남편)를 무시하고 괴롭히는 남편(혹은 아내)이지만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 이들은 무능하고 무지하며 매우 성품이 나쁜 이른바 못난 사람이라는 것이 우리 상식이다.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직장과 사회에서는 매우 성실하고 심지어 배려심이 높은 사람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가정과 직장밖에 모르며 개미처럼 일하는 경우도 꽤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대부분은 이런 결말이 난다. 전문가 앞에서 부부 상담을 받던 중 남편이 자신의 사업이 심각한 재정 문제에 처해 있고, 이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 사업은 물론이고 가정 경제에도 큰 타격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털어놓는다. 당연히 아내는 전혀 이를 몰랐다며 화들짝 놀란다. 도대체 어떤 문제와 과정이 있었던 것일까? 이때 남편은 해당 문제에 관해 아내나 가족과 상의하면 자신이 못났다는 것을 드러내거나 징징대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자신의 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진지하게 문제를 상의하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남편의 폭압적 언행을 아내가 대체적으로 묵묵하게 참아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크게 터져버릴 때까지 버티다보니 오히려 문제가 초기에 해결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참아냄은 대부분 아내의 그릇된 희망과 낮은 자존감과 결부되어 나타난다. 여기서 그릇된 희망은 시간이 지나면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을 의미하며, 낮은 자존감은 ‘나는 저 사람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대방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일은 아주 특수한 사제 관계, 그것도 한쪽의 성장 초반부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별로 좋지 않다. 결국 이는 종속적 관계로 이어지며, 대부분은 결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사례가 직장에서 이른바 부하 직원을 상습적으로 괴롭게 만드는 리더에게도 종종 발견된다. 모 대기업 대표였던 지인은 이런 경우를 ‘리더가 자신만 어른인 것으로 생각하는 착각’이라고 말한다. 심리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적절한 비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를 두고 심리학자들은 이른바 홀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중요한 파트너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을 하기 쉽다고 주장하곤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가정이나 조직 구성원 전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이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홀로 애쓰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구성원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이 같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고 기존에 쌓았던 신망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기기 쉽다. 그리고 이런 두려움은 일정의 반동을 형성해 상대방을 무시하고 상처 주는 말로 왜곡돼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다. 그러니 리더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그것을 사전에 상의하는 것이다. 상의의 정도와 강도에 대한 경험이 쌓였을 때 리더는 점차적으로 직관력을 지니고, 그 직관이 더 쌓이면 철학이 되는 것이다. 리더는 그렇게 한 걸음씩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