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의 럭셔리 제국은 어떻게 탄생했나?
1.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루이비통모에헤네시그룹(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2. 조언을 구하러 온 스티브 잡스에게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25년 후에도 아이폰이 존재할까요?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건 확신할 수 있어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세계인들은 꾸준히 돔 페리뇽을 마시고 있을 겁니다. (왜냐) 우리는 (단순 제품이 아니라) 역사의 일부를 팔고 있거든요” 3. ‘돔 페리뇽’은 1921년 생산을 시작한, LVMH가 판매하는 고급 샴페인이다. (이 말을 들은) 스티브 잡스는 돔 페리뇽의 영속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4. (그리고 어느새)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패션·보석·시계·향수·샴페인 등 브랜드 75개를 거느리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명품 제국을 세웠다. 베르나르 아르노가 LVMH 회장에 오른 1989년 32억 유로였던 LVMH 매출은, 작년에는 25배에 달하는 792억 유로가 됐다. 5. (뿐만 아니라) 올해 아르노 회장은 ‘럭셔리 제국의 황제’에 그치지 않고 세계 최고 부호의 자리까지 등극했다. 미국 포브스가 발표한 ‘2023년 억만장자 순위’에서 아르노 회장은 2110억 달러(약 280조 원)의 재산을 보유해 1위에 올랐다. 2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1800억 달러),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1140억 달러)를 따돌렸다. 6. 아르노 회장이 명품 사업을 빠른 속도로 키워낸 성공 전략은 크게 3가지를 꼽을 수 있다. 1) 디자이너의 역량을 극대화해 상품의 매력을 끌어올렸고, 2) 명품의 대중화를 추구해 저변을 넓혔다. 3) 그리고 중국 시장에 일찌감치 진출하는 결단을 내렸다. 7. (특히) 아르노 회장은 (명품 산업에서 콘텐츠의 가치를 실질적으로 창출하는) 디자이너의 재량을 최대한 존중하는 경영자다. 그는 “디자이너가 제한 없이 창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비즈니스의 기반”이라며 “관리자가 계산기를 손에 쥐고 디자이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 창의적이고 훌륭한 작업은 중단될 것”이라고 했다. (= 창작자 우선 전략) 8. 1995년 지방시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돼 인연을 맺은 ‘존 갈리아노’가 아르노 회장이 아낀 대표적인 디자이너다. 9. 갈리아노는 2000년 패션쇼에서 노숙자에게 영감을 받아 신문지로 만든 드레스를 선보였다. 충격적인 소재와 디자인 때문에 비판 여론이 일자 아르노 회장은 “충격을 주지 않는다면 창조적이지 않는 것”이라며 그를 보호했다. 10. 카를 라거펠트, 알렉산더 매퀸, 마크 제이콥스, 마이클 코어스 같은 저명한 디자이너들도 아르노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전통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LVMH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11. (또한) 아르노 회장은 ‘명품을 갖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는 마케팅에도 능했다. 상류층 거주지에 있던 명품 매장을 백화점이나 면세점으로 확대해 중산층도 명품을 가까이에서 접하게 하고, 동경하도록 했다. LVMH 상품을 파는 매장은 전 세계 5600여 곳에 달한다. 상류사회와 세계 일류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브랜드에 심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12. 스포츠 마케팅도 강화했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루이비통의 서류 가방 위에서 체스를 두는 광고 사진을 활용한 예가 대표적이다. 13. 투자 회사 번스타인의 루카 솔카 애널리스트는 “아르노 회장은 특권층의 전유물을 100만 명에게 파는 ‘역설’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확장성 강화) 14. 일찌감치 중국에 진출한 전략도 주효했다. 1992년 중국이 막 개방을 시작했던 무렵 루이비통은 베이징의 팰리스호텔 지하에 처음으로 매장을 냈다. 도로에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많았던 시절이라고 아르노 회장은 회상한다. 하지만 그는 중국에서 명품 시장이 생겨날 것으로 확신했고, 예상은 적중했다. 15. 현재 LVMH의 전체 매출 가운데 중국 비율이 30%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763134?sid=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