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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학생들에게 물어본다. 꿈이 뭐냐고. 그러면 대부분 이런 대답을 한다. ‘의사’ ‘교사’ ‘변호사’ ‘간호사’ 등등. 무엇이 문제일까? 이른바 ‘사’자 직업들만 대답을 해서? 아니다. 더 중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물어본다. 꿈이 뭐냐고. 그러면 대부분 이런 대답을 한다. ‘의사’ ‘교사’ ‘변호사’ ‘간호사’ 등등. 무엇이 문제일까? 이른바 ‘사’자 직업들만 대답을 해서? 아니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학생들은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직업 즉, 몇 글자로 구성되는 명사로 대답한다. 그러고는 끝이다. 이렇다면 내가 그 직업군에 들어가지 못하면 나는 실패를 하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원하던 그 직업을 갖게 되더라도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이는 현대 한국 사회의 수많은 조직들이 표방하는 비전에 있어서도 같은 문제로 다가온다. 미래를 명사나 양적 지표로 만들어 목표로 삼는다는 것이다. 왜 이것이 문제일까? 청소년의 꿈이든 조직의 비전이든 먼 미래에 관한 것들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구체적인 명사로 한정하면 그 포괄성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런 미래 결과들에 대한 소망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가. 최대한 “동사”로 표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꿈이 ‘교사’라고 대답하는 것과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것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교사라고 꿈을 생각하면 교대에 진학하거나 교육학을 전공해야만 한다. 다른 모든 것은 불필요해진다. 하지만 스포츠, 학원, 공공기관, 심지어는 작은 공방 등 수많은 분야에서 사람들은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더 많아지는 것은 자명하다. 거기에 형용사까지 붙으면 이제 금상첨화다. 예를 들어 ‘새로운 것을 가르친다’고 하면 이제 미래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해진다. 꿈이 일의 영역이나 종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의 모습과 행위, 즉 의미에 초점이 맞춰지고 다양한 영역과 종류가 행위적 의미에 융합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꿈과 비전을 논할 때 명사를 말할까? 간편하기 때문이다. “○○가 사람을 죽였대”라는 말과 “○○가 살인자래”라는 말. 두 표현은 같은 의미다. 하지만 전자보다 후자의 표현을 들을 때 사람들은 생각의 양을 훨씬 더 간편하게 줄인다. 전자를 들으면 “○○가 왜 그랬을까?” 등 더 알아보고 탐색하려는 입장을 취하는 반면, 후자를 들으면 “○○는 나쁜 인간이군!”이라는 식으로 단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가. 얼마 전 어떤 기업의 말단 직원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들에게 회사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여쭤봤다. 대답은 놀라웠다. 별로 고위직도 아닌 그분들이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예술품을 만들어 내는 곳입니다.” 그 회사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화장품 회사였다. ‘○○를 선도하는 최강 기업’ ‘○○를 석권하는 글로벌 기업’ 물론 모두 좋은 말이다. 하지만 비전으로 삼기에는 왠지 목표 아닌 도구만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 기업의 비전들에 좀 더 많은 형용사와 행위를 나타내는 표현들이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조직의 구성원들은 더 많은 생각을 할 것이며 더 많은 가능성을 두드려 볼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내에서 합병한 회사의 비전이다. “새로운 연결 새로운 세상”. 이 회사가 앞으로 얼마나 발전하느냐는 두고 볼 일이지만 이 정도는 돼야 조직의 비전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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