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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단어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시대를 견뎌가는 법

1 10대, 20대에 음악을 제일 많이 들었다. 그때 들은 음악은 평생 간다. 가장 예민한 감성의 시절이기에. 나를 만들어준 그때의 음악들에게 늘 감사하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건 3사람이다. 서태지, 이석원 그리고 이적이다. 그들의 거의 모든 앨범을 샀다. 거의 모든 곡을 들었다. ​ ​ 2 뻔한 사랑타령을 하는 음악을 극도로 싫어했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감정이 있는가. 사랑이라고 쓰지만 실제로는 연애라 불리는 것 외에 이야기할 주제가 얼마나 많은가. 음악이란 자신은 표현하고 생각을 전하는 메신저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자연스럽게 그러한 음악들을 찾아들었다. 공교롭게도 좋아하던 세 명 중에 2명은 작가가 되었다. 음악 활동보다 글로써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 ​ ​ 3 책은 이적의 인스타그램 글의 모음이다. 글이 좋다면 SNS의 글도 책이 될 수 있구나 생각했다. 사실은 책 계약을 먼저 하고 이후에 인스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엉뚱한 로망은 깨졌지만 순서가 뭐가 중요할까. 짧지만 좋은 글들이다. ​ ​ 4 그의 상상력이 부러웠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까. 이렇게 세상을 볼까. 음악을 한창 들을 때 담고 싶기도 했다. 같은 판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난 사람들은 언제나 있다. ​ ​ 5 이적도 곧 지천명의 나이다. 깜짝 놀랐다. 그는 이제 서슬이 파랗던 패닉 2집과 같은 노래는 만들지 않는다. 예전의 그의 음악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의 글은 여전히 재밌다. 엉뚱하다. 발랄하고 재치 있다. 그는 이 책이 시간을 견디는 책이길 바란다했다. 좋아하는 뮤지션과 같은 시대를 보낼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한 경험이다. ​ ​ ​ ——— ​ ​ ​ 스타 노배우가 말했다. “스타가 된다는 건 물이 얼음이 되는 것과 같아. 본질은 같고 잠깐의 변화만 있는 거라고. 언젠가 얼음이 상온에 노출되어 다시 물이 됐을 때 ‘아, 이 물은 예전에 얼음이었지’라며 누가 알아줄 것 같나? 그저 물일뿐이지.” ​ ​ 영화관 우리는 플라톤의 동굴로 걸어 들어가 모닥불에 의해 동굴 벽에 비쳐 일렁이는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넋 놓고 바라본다. 누군가 중얼중얼 주문을 외기 시작하고 누군가 태곳적부터 전해 내려온 부족의 전설을 읊어 내려가자, 듣는 둥 마는 둥 뛰놀던 꼬마는 손을 모아 작은 새 그림자를 벽에 비추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함께 앉아 숨을 죽이고, 몇 번이고 처음인 양 볼을 붉히며, 이야기가 마술처럼 떠올랐다가 홀연히 사라지는 순간의 기적에 열중하리라. 불이 꺼지고 빛이 들어온 곳, 빛이 비친 꿈이 빛나는 곳, 우리가 자진해서 들어가는 유일한 암흑, 영화관에서. ​ ​ 세포 “우리 몸에선 매일 세포가 죽고 그만큼 새로운 세포가 생겨. 1년쯤 지나면 몸 전체에 1년 전 세포는 거의 남지 않지. 그래서 그런 거야. 몇 년 전 네가 저지른 일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건. 그땐 다른 사람이었다고.” ​ 창작 내가 먹은 음식 중에서 어떤 것들이 무슨 조화로 내 손톱이 되고 머리카락이 되고 피와 살과 뼈가 되는지 잘 모르듯, 내가 경험한 삶 속에서 어떤 것들이 무슨 조화로 이 곡이 되고, 저 노랫말이 되고, 그 이야기가 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누군가 창작의 영감에 관해 물어오면 난감하다. 그저 매일 골고루 먹고 마시고 좋아하는 것들을 좀 더 탐닉하듯, 이것저것 듣고 보고 읽고 겪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새로운 작품의 세포가 만들어지는 게 아닐지. 결국 내 몸의 주인이지만 인체 시스템에 대해 잘 모르듯, 내 작품의 주인이지만 창작 시스템에 대해 잘 모른단 말씀. 하루하루 살아가는 수밖에. ​ 눈물 오래전, 정말 즐거운 술자리에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던 친구가 있었다. 다들 놀라 왜 우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답했다.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다시 오긴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모두 웃음을 터뜨리며 걱정도 팔자다." "우리 인생 시작에 불과하다." 소리치면서 건배를 했지만, 이제는 안다. 그 눈물에 일리가 있었음을. 20대 젊은이를 감상에 빠지게 한 것은 취기였겠지만, 그 너머엔 삶의 유한성에 대한 정신 번쩍 나는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을. ​ 지속 가능성 일도 연습도 운동도 공부도 취미도 지속 가능한 방식을 택한다. 한두 번 영흔을 불사를 듯 무리하여 깜짝 성과를 낼 순 있지만 자기 속도와 맞지 않으면 금 방 멈춰 서게 되고, 심하면 넌덜머리가 나 아예 반대쪽으로 수도 있다. 달리지 않고 적정한 보폭으로 적당히 숨찰 정도로 걷는다. 게을러 보일 수도 있고 승부욕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는 안다. 어디로 가는지, 잘 가고 있는지. 그렇게 오늘도 타박타박 걷는다. 계속 걸을 수 있는 페이스로 가끔 쉬기도 하며. 흥분해서 내닫다 탈진하지 않도록. ​ ​ 술 술은 첫 두 잔이 가장 행복하다. 이후는 그 기분을 유지하려 애쓰는 짠한 발버둥. ​ ​ 성공 싫은 사람과는 같이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상태. ​ ​ 자유 한번 홀딱 젖고 나면 더 젖을 수는 없다. 그때부터 자유. ​ 근심 마음엔 근심의 방이 있지. 늘 무엇으로든 꽉 차있어. 한두 가지 근심을 겨우 떠나보낸 뒤, 혹시나 들여다보면 새 근심이 차오르고. 방을 없앨 수 없단 건 나도 알아. 방문을 열지 않으려 애쓸 뿐. 다만 얄궂게도 잠기질 않아서 매일 밤 삐거덕 소리와 함께 근심은 또 슬그머니 흘러나오네. 오늘도 우리 모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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