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두산 베어스와 KT 위즈의 한국시리즈 4차전이 벌어지던 날이다. 두산 베어스가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 종료까지 아웃카운트는 4개 밖에 남지 않았던 상황이다. 두산 베어스는 이미 3연패를
몇해 전 두산 베어스와 KT 위즈의 한국시리즈 4차전이 벌어지던 날이다. 두산 베어스가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 종료까지 아웃카운트는 4개 밖에 남지 않았던 상황이다. 두산 베어스는 이미 3연패를 당한 뒤라 우승은 KT 위즈로 거의 기운 상황이었다. 너무나 일방적인 4연패로 한국시리즈를 마감하기 직전에 걸려온 전화 한 통. ‘KT 위즈를 위한 우승 축하 광고를 준비하자’는 두산베어스 구단주의 의견이 담긴 전화였다. 4연패라는 일방적인 패배 속에서 상대팀을 위한 축하 광고를 하자는 구단주의 의도는 심플했다. 준우승팀이 우승팀에 보내는 진정성 있는 ‘진짜 축하 광고’를 하자는 것이었다. 승부는 차가웠지만 스포츠맨십 뜨거움이 느껴지도록 말이다. 이내 급하게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걱정은 새로운 시도라는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축하 광고도 타이밍이 중요한 법이다. 생일 축하도 지나고 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한국시리즈가 끝난 건 목요일 밤이었고, 주말을 지내고 월요일 아침 신문에 우승팀을 위한 축하 광고를 내보내는 것이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광고를 위해 별도로 촬영할 시간도 없었기에 한국 시리즈 관련 기사에 쓰인 사진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 두산 베어스 선수들이 일렬로 서서 KT 위즈에 박수를 보내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4차전까지 치열하 게 승부를 펼쳤던 두산 베어스 선수들이 지친 상태에도 더그아웃 밖으로 모두 나와서 우승 팀을 향해 축하 박수를 보내는 장면에서 그들의 진심이 느껴졌다. 사진이 정해진 후 다양한 헤드라인에 대한 의견이 오갔지만 최종 확정된 헤드라인은 바로 광고에 실린 그대로다. “KT 위즈의 우승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어떠한 기교 없이 정직하게 쓰는 것. 그 안에 축하 하는 진심을 담을 것. 비록 광고 카피라고 볼 법한 카피적인 맛은 없을지라도 축하는 가장 축하답게 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순간만큼은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 주고 싶었다. 승자독식의 스포츠 승부 속에서 패자의 솔직한 인정과 진심 어린 축하가 하나의 작은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나의 광고 인생이 길어질수록 끊임없이 되뇌는 고리타분한 질문 하나가 있다. ‘과연 좋은 크리에이티브란 어떤 것인가?…‘ 수없이 화려하고 수없이 놀라운 크리에이티브도 있겠지만 이번 우승 축하 광고처럼 어떤 기교나 스킬 없이 담백하게 진심으로 패자가 승자를 인정하는 문화를 보여주는 것도 크리에이티브의 한 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패색이 짙은 그 승부의 와중에 오히려 상대를 위한 우승 축하 광고를 먼저 제안한 구단주의 용기 또한 분명히 또 하나의 크리에이티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G를 향하는 숨가쁜 시대에서도 느림의 미학은 여전히 살아 있다. 현란한 광고들 사이에서 담백하고 진솔한 크리에이티브도 함께 살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