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역사 시간에 국사 선생님은 여러 사학자들의 역사관을 들려주었다. 그중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규정한 단재 신채호의 역사관이 머릿속에 박혔다. 즉, 역사는 나와
고등학교 때 역사 시간에 국사 선생님은 여러 사학자들의 역사관을 들려주었다. 그중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규정한 단재 신채호의 역사관이 머릿속에 박혔다. 즉, 역사는 나와 내가 아닌 자 사이의 투쟁의 기록이라는 뜻이다. 단재 선생은 ’조선상고사(동서문화사)‘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마음의 활동 상태의 기록이다.” “무엇이 ‘아’이고 무엇이 ‘비아’인가? (중략) 이를테면 조선인은 조선을 아라 하고 영국•러시아•프랑스•미국 등을 비아라고 한다. (중략) 조선사는 조선 민족이 그렇게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다." 결국 조선사, 즉 한국사는 우리 민족과 외부 사이의 투쟁인 셈이다. 단재 선생이 그 같은 역사관을 갖게 된 이유는 분명했다. 선생이 살았던 때는 일제 강점기. 일제가 조선을 강제병합하고 우리 민족을 탄압하던 때였다. 당시 우리 민족의 최대 숙원은 독립이었다. 그 독립을 방해하는 일제와 싸워 이기는 게 우리 민족의 역사가 되어야 했다. 다시 말해 우리 민족이라는 아(我)가 일제라는 비아(非我)와 싸운 투쟁의 기록이 우리의 역사가 되어야 했다. 실제로 우리가 오늘날 배우는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대부분 그러하다. 그 역사에서 아(我)가 아닌 비아(非我), 즉 일제와 그 부역자들은 민족의 적으로 규정됐다. 그 당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거다. 역사의 투쟁에서 누가 우리 민족을 대변해 싸웠는지, 누가 일제 편에 서서 우리와 싸웠는지 구분하는 게 중요했다. 해방 이후에도 적과 동지의 구별은 여전히 중요했다. 아니, 전보다 더 중요해졌다. 자칫 구별을 잘못하는 순간, 목숨을 잃게 된다. 좌우 이념으로 갈리기 시작한 해방 직후와 한국 전쟁의 와중에서 누가 대한민국의 편이고, 누가 북한 편인지를 구분해야 했다. 지리산과 제주도의 어느 마을 주민은 낮에는 대한민국 편이 되고, 밤에는 북한 편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아(我)가 아닌 비아(非我)는 적으로 간주됐다. 그쪽 편으로 구분되는 순간, 목숨을 잃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뒤에도 그 구별은 여전히 폭력적인 힘을 발휘했다. 좌파나 이른바 빨갱이로 규정된다는 건 사회적 매장을 뜻했다. 한국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북한 편, 다시 말해 적의 편이라는 걸 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자신이 아(我), 즉 대한민국 편이라는 신호를 계속 내보내야 했다. 오후 5시 사이렌이 울리면, 오른손을 가슴에 올린 채 정자세로 서 있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도 같은 의식을 치러야 했다.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게 중요한 나라에서는 어떻게든 동지로 구별되어야 생존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에는 그 구분이 역전됐다. 민주화 편에 섰느냐 서지 않았느냐가 구분의 기준이 됐다. 어느 사회든 권력을 가진 자들은 스스로를 그 사회의 주도적 ‘아(我)’로 규정하기 마련이다. 반대로 그 아에 대응하는 쪽은 ‘비아(非我)’로 분류된다. 아(我)와 비아(非我)의 구분은 때때로 특정 자격이 있고 없음의 기준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아(我)에 속한 자들은 그 ‘아(我)’ 바깥에 있는 자들에게 ‘당신은 정권을 잡을 자격이 없다’라는 비판을 가한다. 안철수가 대권 후보로 나섰을 때 ‘민주화 운동 당시 뭘 했느냐? 아무것도 하지 않은 당신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라고 비판했다. 반대로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정치적 승계자 격인 ‘국민의힘’에는 그 비판이 낙인처럼 붙어 다닌다. 민주화된 이 시대에도 비아(非我)는 여전히 적으로 간주된다. 결론적으로 20세기 들어 한국 사회는 세 가지 유형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을 겪었다고 할 수 있다. 1️⃣하나는 대외적 투쟁이다. 한민족을 아(我)로 보고, 외부세력 특히 일본을 비아(非我)로 보는 투쟁이다. 나머지 두 가지 투쟁은 대내적으로는 발생했다. 2️⃣반공을 아(我), 좌익을 비아(非我)로 보는 것이며, 3️⃣민주화 운동 참여를 아(我), 그 반대편을 비아(非我)로 보는 것이다. 이 세 가지 투쟁에서 비아(非我)는 항상 아(我)의 적으로 인식됐다. 물론 그런 구별이 정당했을 때도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가 그랬다. 일제라는 비아(非我)는 우리 민족이라는 아(我)를 흔적도 없이 지우려고 했다. 강제로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고, 우리글과 말을 배우지 못하게 했다. 당시 그들은 분명 우리의 적이었다. 한국전쟁을 일으킨 김일성 세력은 수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범죄자였다. 과거 권위주의 세력은 분명 참담한 인권탄압을 저질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00년 이상 적과 동지의 구별이 우리 민족의 머릿속을 장악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같은 구별을 버려야 한다. 비아(非我)를 적으로 보는 사고에 빠져 있는 한 우리 사회 내부의 분열과 갈등, 반목은 피할 수 없다. 우리 편이 아닌, 상대편 즉 비아(非我)는 적이 아닌 협력과 소통의 대상이다. 좌파에 우파는 적이 아니며, 보수에 진보 역시 적이 아니다. 좌파는 우파가 정권을 잡는 것을 용인해야 하며, 보수 역시 그래야만 한다. 그런 상황을 용인할 수 없다는 건, 상대 편 즉 비아(非我)를 적으로 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E.H 카는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다. 지금 현재에 선 우리들은 과거 100년과의 대화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비아(非我)라는 적들로부터 우리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고, 그 적들을 무찔러 우리의 경계를 더욱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혹시 아직도 우리 민족 또는 우리 정파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침해한 비아(非我)와 계속 싸워야 한다고 보는가? 아니면 이제는 적과 동지의 구별을 멈추고 비아(非我)라는 파트너들과 협력해 세상을 공존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 선택은 온전히 우리 자신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