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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

보름만 있으면 매경 사내벤처로 창업한 지 1년이 된다. 그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여느 스타트업이 그렇듯 팀 구성, 투자 유치, 제품 개발 모두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래도 아직은 운 좋게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내일부터 헤이그라운드에서 프론트원으로 창톡 본사를 옮긴다. 신보 NEST에 선정돼 10억원 대출 보증을 받은 데 이어 사무실 지원도 받은 덕분이다. 팁스 지원금까지 포함하면 창업 후 최대 17억원 이상 지원을 받게 됐다. 요즘 같은 투자 혹한기에 참 감사한 일이다. 사실 매경 기자로 근무했던 12년을 제외하면 나는 평생 나라와 사회의 도움을 받았다. 중고등학생 때는 차상위 계층으로 5년간 장학금을 받았다. 대학생 때는 성남시와 교육부에서 전액 장학금을 3회 받았다.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전사하셔서 할머니께 지급된 유족 연금은 때때로 우리 가족의 생활비와 내 학자금으로 쓰였다. 이런 나라의 지원들과, 홀어머니의 끝없는 헌신에 힘입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진심으로 모두에게 감사하다. 내가 받은 도움을 사회에 환원하는 길은, 내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 하는 것 뿐이었다. 매경 기자로 근무한 12년 간 나는 아무도 쓰지 않지만 꼭 필요하다 싶은 기사를 쓰기 위해 사비로 국내외 출장을 다니며 정말 열심히 일했다. - 베이비박스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고(물론 이건 내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알려졌을 것이다), - 프랜차이즈 다점포율을 고안, 9년간 단독 조사해 우량 프랜차이즈 선택 기준을 제시했다. - 일본, 중국, 대만, 미국, 이란, 터키까지 가서 특파원은 관심 없는 글로벌 자영업 트렌드 기사를 전했다. - 현장에서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KBS라디오 성공예감에서 7년 반 동안 창업트렌드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 아시아 언론 최초로 미국 다점포 프랜차이징 컨퍼런스(MUFC)를 취재, 이듬해 국내 프랜차이즈(교촌치킨, BBQ)가 참가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 다점포율 통계를 바탕으로 한국노동연구원과 보고서를 작성, 소상공인을 생계형, 기업가형으로 구분하고 전자는 보호, 후자는 육성해야 한다고 발제했다. 이는 현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 중 하나로 반영됐다. - 한국노동연구원과 공동으로 쓴 보고서를 MUFC, 다점포율 취재기와 함께 프랜차이즈학회, 외식경영학회 등에서 발표했다. - 무이자를 표방한 주류 대출에 숨은 고금리와 프랜차이즈의 기만 행위를 단독 고발,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매경이코노미 44년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수상이었다. - 프랜차이즈의 점포가 다변화 되는 상황에서 점포당 매출보다는 '면적당 매출'을 제공해야 가맹점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기사를 써서 가맹사업법 시행령이 개정, 정보공개서에 면적당 매출이 신설됐다. - 프랜차이즈 트렌드, 창업 트렌드 등 관련 저서를 공저 포함 5권 이상 썼다. 돌아보면 기자로서는 나름 괜찮은 커리어였다. 그래도 계속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내가 천착했던 소상공인 문제-높은 폐업률과 과포화, 비전문성, 약탈적 금융, 프랜차이즈 갑질 등은, 아무리 기사를 써도 달라지지 않았다. 자영업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스타트업들을 응원하기 위해 시리즈 기사를 연재하고, 사비로 카메라를 사서 편집 기술을 독학해 유튜브에 인터뷰 영상도 올리고, 팟캐스트도 하고, 내가 취재한 9년치 다점포율 로데이터를 통으로 다 전달하고, 모 국회의원실에서 "국정 감사용 기사를 하나 써달라, 작품 하나 만들어보자"는 말에 "나는 드러나지 않아도 되니 그냥 필요한 자료 있으면 얘기해라, 내가 취재해서 데이터 다 넘겨주겠다"고 해서 주고.. 정말 기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찾아서 다 했다. 기자가 왜 이런 걸 하냐는 말까지 들으면서 별 걸 다 했다.. 그랬는데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젠장.. 나는 지난 12년간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저 기사들을 써온 것인가. 근본적인 회의가 들었다. 물론 기자는 기자의 일을 하면 된다. 내가 쓴 기사로 창업할 때 도움 받았다는 소상공인들의 인사는 계속 받고 있었다. 그럼 내 역할은 다 한 거지. 나머지는 다른 사회 주체들이 또 해내겠지.. 그렇게 생각할래도 성에 안 찼다. 좀 더 눈에 띄게, 더 실효적으로 세상의 변화에 기여하고 싶었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받은 사회로부터의 도움을 더 적극적으로 갚는 길이었다. 무엇보다 장사 경험도 없는 유사전문가, 창업 컨설턴트들이 소상공인에게 되도 않는 컨설팅을 하며 혈세를 받아 가는 비정상을 정상화하고 싶었다. 그래서 창톡을 설립했다. 평생 기자 말고는 다른 꿈은 꿔본 적 없었던 나의 첫 이직이다. 아마 누군가 창톡 같은 스타트업을 먼저 했더라면, 나는 신이 나서 그 대표를 지지하고 홍보하는 기사를 쓰고, 유튜브 영상을 자발적으로 촬영, 편집해 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하려니, 내가 나를 홍보하는 게 참 못할 짓이다. 그래도 창톡을 설립한 취지를 생각하면, 그 비전에 공감해 함께 해준 우리 팀원과 투자사를 생각하면, 내가 갚아야 하는 도움을 준 사회와 소상공인들을 생각하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홍보도 열심히 해야지.. 프론트원이란 좋은 공간을 내준 신보와 나라에 또 감사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 요즘이다. 잡썰이 길었지만.. 하여간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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