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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으로는 ‘언짢거나 못마땅하여 계속해서 자꾸 보채거나 짜증을 내는 것’을 징징거림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부정적인 뉘앙스를 넘어 팔딱팔딱 생명력 있는 동사로 ‘징징거림’에 의미를 불어넣은 이는 필

사전적으로는 ‘언짢거나 못마땅하여 계속해서 자꾸 보채거나 짜증을 내는 것’을 징징거림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부정적인 뉘앙스를 넘어 팔딱팔딱 생명력 있는 동사로 ‘징징거림’에 의미를 불어넣은 이는 필자의 친구 J다. “아플 땐 징징거리는 게 최고 명약이야. 언제든 전화해. 나한테 얼마든지 징징거려!” 그리고 “징징거림도 총량이라는 게 있다”고 덧붙였다. 정말 그랬다. 실컷 징징거리고 나면 좀 덜 아팠고, 그 힘으로 한동안은 버틸 수 있었다. 오래전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도 그랬다. “내가 가서 뺨따귀라도 갈겨줄까? 네가 원하면 언제든 해줄게. 나한테 징징거려!” J는 정말 달려갈 기세였다. 그 말이 얼마나 통쾌하고 시원하던지, 웃음까지 빵 터졌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말만으로도 든든한 보험을 든 기분이었다. 이 얼마나 신박한 징징거림인가? 정신분석학자 이승욱 박사는 우울에 대해 ‘분노하지 못한 자의 형벌’이라고 표현한다.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고 스스로 분노를 삭이려고만 할 때 우울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필자는 분노의 가장 초기 표출이 ‘징징거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징징거림 자체는 좋은 신호이자 건강하게 문제를 푸는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징징거리되, 누구에게 어떻게 잘 징징거릴 거냐가 관건이다. 징징거릴 상대로 가족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일상을 함께하는 가족 간에는 지구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운전도 가족한테는 못 배운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가족은 안 그래’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타고난 복이니 마음껏 하시길.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먼저 징징거릴 대상을 잘 찾아보자. 꼭 절친일 필요도 없다. 비슷한 경험을 해봤다면 긴 말 필요없이 공감이 잘 될 테니 금상첨화다. 지인 중에 없다면 커뮤니티를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후배 중 한 명은 종종 전문 상담실을 애용한다. 대면하는 게 부담스러우면 전화상담만으로도 충분하다. 효과를 보고 나면 나 또한 누군가의 징징거림을 들어주는 품이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어지기도 한다. 분노와 징징거림이 필요하다고는 했지만,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경우라면 경중에 상관없이 용납될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다만, J의 말처럼 사람마다 징징거림의 총량이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이걸 너그럽게 잘 받아줄 수 있는 부모, 교사, 어른이 부재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징징거려서 해소될 수 있는 소소한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파괴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요즘 끊임없이 이어지는 심란한 뉴스들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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