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ty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짓눌려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관련 뉴스를 보면서, 2003년작 드라마 와 2015년작 영화 이 떠올랐다. 그 장면들은 좌절과 슬픔에 빠진 우리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짓눌려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관련 뉴스를 보면서, 2003년작 드라마 와 2015년작 영화 이 떠올랐다. 그 장면들은 좌절과 슬픔에 빠진 우리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은 12세 소녀 라일리의 마음속 감정의 움직임을 다룬 영화다. 주인공인 기쁨과 슬픔은 라일리의 마음속 통제본부를 이탈한 상태. 이로 인해 라일리는 마음의 균형이 무너져 가출을 감행하려는 위기 상황이다. 기쁨과 슬픔은 라일리의 유아기 상상의 친구 빙봉(Bing Bong)의 길 안내를 받아 통제본부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도중에 빙봉이 소중한 로켓을 잃게 된다. 빙봉이 라일리와 함께 타고 온갖 모험을 했던 로켓이다. 라일리의 기억에서 잊힐까 노심초사하는 빙봉에게는 큰 좌절이다. 빙봉은 주저앉아 버린다. 그 순간, 슬픔이 빙봉 옆에 앉는다. 빙봉의 아픔에 한껏 공감한다. “로켓을 빼앗겨서 안됐어. 네가 사랑하던 거였는데 그들이 로켓을 가져갔어. 영원히.” 빙봉은 “내가 라일리를 위해 남겨둔 건 그것뿐인데”라며 울먹인다. 빙봉은 “우리(라일리와 빙봉)는 정말 최고의 친구였어”라며 로켓을 타고 놀던 때를 떠올린다. 슬픔은 “정말 그랬겠다”라며 빙봉을 안아준다. 슬픔의 어깨에 기대에 울던 빙봉은 이윽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이제 괜찮아. 가자!” 아픔과 좌절에 빠진 이를 일으켜 세우는 건 이성적 충고나 조언이 아니다. 기운을 내라는 말도 위로가 안된다. 그들을 기분 좋게 하려는 노력도 대개는 쓸모없다. 그런 건 기껏해야 부차적이다. 영화 속 기쁨의 말에 빙봉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반면, 빙봉은 슬픔이 보인 공감에 반응했다. 자신의 아픔을 깊이 이해한 슬픔의 눈과 손길, 포옹에 반응했다. 빙봉은 다시 일어서며 “이제 괜찮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마음이 이렇다. 누군가가 내 아픔을 이해하고 안아줄 때, 인간은 다시 일어설 힘을 낸다. 인종 차별로 좌절과 슬픔에 빠진 흑인들은 훨씬 더할 것이다. 조지 플로이드는 목숨을 잃기 전에 어머니를 찾았다. “엄마, 엄마, 난 이제 끝났어.“ 그 순간에도 플로이드의 목을 누른 백인 경찰관의 모습에 분노와 아픔을 느끼지 않을 흑인은 없을 것이다. 그 감정이 폭발하는 건 당연하다. 이에 대해 이성적으로 “그러지 마라. 그런 건 폭동이야. 흑인 인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라고 조언하는 건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들의 조언은 흑인들이 느끼는 좌절과 분노를 억지로 억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억제가 깊을수록 분노는 깊어진다. 또 다른 인종차별 사건이 터질 경우, 그 분노는 더 큰 폭력으로 발화될 것이다. 드라마 의 한 장면이 기억난다. 좌포청 다모 채옥(하지원 분)이 어깨에 피를 흘리는 부상을 입었을 때였다. 종사관 황보윤(이서진 분)이 채옥의 상처를 보고는 “아프냐”라고 묻는다. 채옥이 고개를 끄덕이자 황보윤은 “나도 아프다”라고 한다. 이 대사는 수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다모 드라마에 푹 빠진 이른바 ‘다모 폐인’이 양산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우리들 마음이 그만큼 ‘공감’에 굶주려있고, 공감을 갈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플 때 같이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삶에서 큰 위로를 받는다. 내 존재 자체가 인정받는 것만 같다. 그 순간 우리는 살아갈 힘을 낸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마음이 이럴진대, 인종차별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흑인들은 어떤 마음일까. 그들의 고통에 ”아프죠?“라고 묻고 ”나도 아파요“라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반대로 행동했다.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자 그는 트윗에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이 시작된다.”라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는 군대도 동원하겠다고 했다. 이는 흑인에 대한 분명한 위협이다. 미국 대통령은 법과 질서를 내세울 뿐, 흑인의 아픔에 조금도 공감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태도로는 법과 질서를 회복할 수 없다. 흑인들의 분노에 기름만 부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미국 사회는 트럼프만큼 차갑지 않았다. 상당수 미국 경찰들은 시위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당신이 아픈 건 당연합니다. 당신이 아프기에 나도 아픕니다”라는 의미였다. 동부 뉴욕, 서부 새너제이, 남부 오클라호마 등 곳곳에서 경찰들은 시위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시위대가 약탈을 멈춘 건, 트럼프의 협박이 아니라, 미국 경찰과 지도자들이 보여준 공감 덕분이다. 쓰러진 사람을 살리는 건, 논리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공명이란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알림

알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