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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가르침 중에 ‘무아(無我)’라는 게 있다. ‘나를 나이게 하는 고정불변의 실체는 없다’는 뜻이다. 지금의 내 직업, 생활습관, 성격 등은 시간이 흐르면 달라진다. 10년 전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히 여러 면에서 다르다. 마찬가지로 10년 후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를 것이다. 변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해롭다. 성장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내 모습이 내 참모습이기에 나는 변할 수 없어’라고 고집을 피워서는 안된다. 경험하고 배우며, 이를 통해 ‘내가 진정 되고 싶은 나’가 무엇인지 자각하고 그 ‘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게 진정 스스로에게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타깝게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지금 내 모습에 안주한다. 지금 내가 일하는 방식, 지금의 생활습관, 라이프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 배우자를 대하는 방식, 지금 아이를 키우는 방식도 바꾸지 못한다. 그러면서 ‘나는 내 스타일이 있어. 내 모습대로 살 거야’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곤 한다. 아주 꼼꼼한 직원 A가 있었다. 작은 것 하나 혹시 실수가 없을까 싶어 일일이 챙기는 스타일이다. 그가 대리였을 때 상사는 무척이나 흡족했다. 그에게 일을 맡기면 실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A가 관리자가 됐을 때 그 꼼꼼함은 오히려 독이 됐다. 그는 직원의 일을 세세하게 관리 감독했다. ‘마이크로 매니저’가 된 것이다. 그의 직원들은 꼼짝달싹할 자유도 없는 거 같았다. 점점 업무 의욕을 상실해 갔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내지 않게 됐다. “어차피 A가 세밀히 지정하는 방식대로 마치 꼭두각시처럼 일해야 할 텐데 왜 그러겠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A의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미경식 관리 방식을 버리라고 따뜻하게 조언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이게 내 모습이야. 나는 내 모습대로 살 때 가장 편해. 억지로 남 흉내를 내고 싶지 않아.” 결국, 그는 주변의 신뢰를 잃었고, 원하는 자리로 승진하지도 못했다. A가 하급 직원일 때 ‘꼼꼼한 습관’은 미덕이었다. 그의 습관이 그의 업무와 잘 어울렸다. 그는 자신의 모습에 충실함으로써 회사의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관리자가 되고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기존 모습을 버려야 했다. 새로운 스타일을 익혀야 했다. 그가 원하는 자아상이 ‘직원의 성장을 이끌어 내고 성과를 높이는 리더’였다면, 그에 맞게 자신의 습관을 재창조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의 기존 습관들은 리더 업무에 역행했다. 진정 그가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면, 관리자 직을 버리는 게 옳았다. 부장 B는 A와 정반대 스타일이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자기 의견을 강요하지 않았다. 직원들의 생각이 자신과 당연히 다를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리더 역할을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것 같았다. 그는 회사의 미션과 핵심 가치가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믿었으나, 그 가치를 직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공유하기를 꺼렸다. 그렇게 하는 건 마치 직원들의 생각을 조종하는 행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는 직원들의 내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치의 공유’는 리더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회사의 미션을 직원들이 내면화해야 자발적 헌신을 이끌어낼 수 있다. B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알지만 실천은 못하겠더라고요.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중요시 여기는 가치를 팀원들에게까지 요구할 수 없겠더라고요.” 그렇기에 그는 “내 본모습은 리더 역할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직원들에게 헌신을 요청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았다”고 밀했다. B 역시 자신의 기존 모습에 충실한 나머지 더 나은 리더로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핵심 구절이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알은 우리가 지금 속해 있는 편안하고 익숙한 세상이다. 알을 깨고 나올 때 우리는 낯선 세상을 만나게 된다. 그 세상은 두렵고도 불편한 곳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실패하고 좌절도 하겠지만 새로운 경험을 통해 우리는 ‘달라진 나’ ‘성장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A와 B는 알을 깨고 불편한 세상으로 나오기를 거부했다. 편안하고 익숙한 알 안에 머물기를 선택했다. 그러나 그들이 새로 맡은 ‘리더의 업무’는 알 안에 머물러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A는 직원의 업무에 세세하게 간섭한 나머지 그들의 자율을 앗아버렸고, B는 직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을 기회를 포기하고 말았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성장한 나'를 발견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 그대로 ‘고정불변의 나’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금 내 모습 그대로 살겠다고 집착하는 건 어리석다. 그저 신기루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진정 되고 싶은 나, ‘나의 존재 이유’를 찾는 여정을 끊임없이 계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서, 회사에서 나의 행동을 통해 그 존재 이유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여정에는 종착역이 없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변할 것이고, 우리 역시 그 세상과 호흡하며 변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끝없는 여정이야말로 인간으로서 우리의 진정한 사명이며 의무다. 헤르만 헤세는 소설 <데미안>에서 이렇게 말한다. ”각성된 인간에게 부여된 의무는 단 한가지, 자신을 찾고 자신의 내부에서 견고해져서 그 길이 어디에 닿아 있건 간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길을 더듬어 나가는 일. 그 이외의 다른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략) 각자를 위한 진정한 천직이란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단 한가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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