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다 같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부장이면 이 정도는 파악하고 와야 하는 게 기본 아닌가요?” A임원은 B부장을 보면서 목소리가 높아진다.
팀원의 보고를 함께 듣는 자리에서 상사인 나를 앞에 두고 팀원에게 업무 진척도를 묻다니! 이 정도는 미리 파악하고 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열이 확 오른다.
경력사원으로 몇 달 전 합류한 B부장은 부지런히 움직이는 데 반해 일의 우선순위가 상사인 A와 맞지 않았고 성과도 나지 않았다. 나빠지는 경기 상황과 연말 마감이 다가오자 A는 마음이 조급하다.
B는 A에게 찾아와 의논하는 법도 없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일을 완결해서 오곤 했지만 일의 방향성은 늘 삐딱했다. ‘중간에 의논을 좀 하지!’ 커뮤니케이션도 문제인 것 같았다.
기대했던 것과 동떨어진 모습에 A는 B부장에게 일대일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면담 3일 전 필자와 만났다. “기대와 다르니 답답하겠네요. 면담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어요?”
A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다. 그간의 업무 처리에 대한 실수를 정리했고 이것과 관련해 주고받은 메일, 쪽지 등을 모으고 있었다. 한마디로 증거 수집은 마쳤다. 정확한 피드백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긴 하다.
“그는 어떤 사람이에요?” “네? 어떤 사람요?” 갑자기 들어온 필자의 질문에 A는 어리둥절해했다. 지금 헤매고 있는 B부장의 모습을 좀 멀리서 바라보면 그의 어떤 모습이 보이는가를 물어본 것이다.
“글쎄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성실하고 인성도 좋고 리더십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아 본인도 속상하겠다 싶네요.”
“그렇군요. 그런 그를 보면 누가 생각나요?” 이런 상황에서 필자가 자주 애용하는 질문이다. “네?”하던 A의 안면에 긴장이 빠지며 침묵이 한참 이어졌다.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저요. 제가 떠올라요. 부장 때의 제 모습이요. 엄청 열심히 뛰어다니고 열정도 넘쳤지만 일한 만큼 성과가 따라주지 않았고요. 지금의 B부장과 비슷했네요.”
솔직한 자기 고백에 필자도 흠칫했다. 지금은 유능한 임원이 된 A. 그때 그 시절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한껏 힘이 풀린 눈빛으로 말했다. 그때의 그를 질책하기보다 기다려주고 격려해 준 상사가 있었다고. '아하! 모먼트'의 순간이었다.
‘B부장에게 어떤 상사가 되고 싶으냐?’는 필자의 질문은 이미 불필요했다. A는 순식간에 자기가 해야 할 일과 그날의 면담의 방향을 스스로 정했다. 며칠 후 만난 그는 약간의 흥분으로 한껏 밝아져 있었다. “코칭 없이 면담 들어갔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그동안 수집한 증거들을 잠시 뒤로 미루고, 새로 합류한 회사생활의 어려움을 묻는 상사의 질문에 B는 자신의 심정을 콸콸 쏟아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고 괴롭고 초조한 상황에서 잡힌 면담으로 인해 지난 며칠간 잠도 안 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한참 들어준 A는 부장 시절 자신의 모습을 고백했다. 그리고 그때 기다려 준 상사의 이야기도 해 주었다. 마지막에 A는 자신도 B에게 그런 상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B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컥했다. 직장생활 통틀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런 식의 면담은 처음 경험했단다.
이제 상황 끝. 분명한 성격의 A는 다음 단계로 준비한 자료들을 공유하며 직접적인 피드백을 했고 앞으로의 요구사항도 말했다. 마지막에는 “내가 도와줄 것은 없나요?”로 마무리했다.
그 후 그들은 서로 자주 대화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이번 일로 각자의 패턴을 완전히 바꾸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문제를 앞에 두고 수시로 머리를 맞댈 것이다. 상사는 먼저 부하직원의 상황을 물어봐주고 부하직원은 이해를 받을 기회를, 설명할 기회를 얻을 것이다.
이게 바로 코칭 리더십의 대화이다. 상사에게 이해받았다고 느낀 B부장은 입사 후 오랜만에 편안한 잠을 잤을 것이다. 그리고 축 쳐진 에너지가 올라가면서 잘 해내리란 각오를 다질 것이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님을 느낄 것이다.
사람에 대한 믿음과 대화방식. 이것이 코칭 리더십의 기본 원리이다. 필자는 회사를 떠나기 직전에야 코칭리더십을 알게 되었다.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없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늘도 부하직원을 붙잡고 열을 내고 있는 후배들에게 이 간단한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지시하기 전에 질문하라! 먼저 들어라. 그도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믿어라! 믿지 않으면 나만 손해다.“ 지시하는 대로만 움직이는 부하직원을 원하는가? 아니면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직원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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