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즐리컴퍼니
이지영
나는 못해 - AI 시대의 발목 잡기
코딩을 모른다. 파이썬, SQL 을 배우려 시도한 적은 두 번 있다. 하지만 파인썬은 세상에게 인사하는 방법만 기억난다. (Hello World!) SQL 은 *을 골라오라는 코드 밖엔 못 쓴다. 그런 내가 IT 회사 PO로 이직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PM분들을 만날 때마다 물어본 건 "기획자가 개발을 얼마나 알아야 해요? 코딩 공부 해야 하나요?"였다. 대부분 "개발 잘 몰라도 된다. PM은 커뮤니케이션만 잘하면 그런 부족함도 극복할 수 있다" 는 대답을 해주셨다. 3/4는 맞는 말이었다. 개발자분들이 PO에게 원하는 건 어떤 목적으로 개발하는 기능인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에 대한 명확한 정의 위주였다. PO가 역으로 물어봐야할 것은 개발자분이 선택한 방향으로 진행했을 때 장점과 단점, 그리고 대안이 있는지 였다. 일을 잘하는 분들이라 그런지 대안까지 옵션을 많이 주셔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결론은 개발을 몰라도 기획자 일을 할 수 있었다. 가끔 모니터로 코드를 보여줄 때마다 당황하긴 했지만... 오히려 다시 돌아간다면 어줍잖게 Hello world 를 입력하고 있느니 IT 지식을 더 공부했을 것 같다. 서버는 뭐고 API 는 뭐고 같은. 게다가 대 GPT의 시대에 일을 한다는 건 행운이었다. 모르는 용어가 나오면 GPT한테 물어본다. 내 기획의 장점과 단점, 리스크를 보안할 장치도 구상해준다. 심지어 SQL 쿼리도 짜준다. 내가 아는 건 어떤 테이블에 어떤 데이터가 있다 뿐인데. SQL 쿼리를 처음부터 짜야 했다면 데이터팀에 매번 추출을 맡기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면 실행의 주기도 길어졌을 것이고. 직무 전환을 두 번 했다. 광고기획에서 상품기획으로, 그 다음은 서비스 기획으로. 각 과정의 첫 시작에서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란 걱정을 진짜 많이 했다. 하지만 '나는 못할 거야.'라고 단정짓진 않았던 게 직무전환 후 적응에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지금 잘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끔찍하게 못하는 수준이 아닐 뿐...) 어떻게든 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특히 AI 시대에선 AI와 끈질기게 문답을 주고 받으면 뭐든 나온다. 최근에 구글 앱스스크립트를 도전했는데 8시간 GPT와의 팀플 끝에 무언가가 나왔다. 코드는 GPT가 쓰고, 나는 GPT가 과부하 오지 않도록 단계별 할 일을 쪼개줬다. 그랬더니 결과가 나왔다. 단정적, 선언적인 생각은 행동을 제약하게 된다. 나는 안 해봐서 못해. 라는 생각을 혹시라도 하게 될까봐 주절거리는 글.
이지영
실패를 위해 열두시간 일하는 삶이라니
어쩔 수 없고, 당연하다는 것도 알지만 그럼에도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성공을 확신하고 프록덕트를 고도화 하진 않았다. 애매한 사용자 수, 애매한 기능, 매일 터지는 이슈, 비즈니스모델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있는 상태. 할 수 있는 건 프로덕트 개선 뿐이라 최선을 다했으나, 나 스스로도 확신이 없다. 패배감과 무력감이 상황을 개선하는 데에 별 도움이 안되는 것도 안다. 그치만, 그래도 괜히 서럽다. 최근 보는 웹툰에서 "나는 그동안 노력만 해와서 이제는 노력 없이 사랑 받고 싶어." 라는 대사가 나왔다. 보자마자 왈칵 눈물이 나서 별안간 울었다. 노력 없이 성공을 바라진 않지만 적어도 헛되기를 바라는 건 아닌데. 아주 나중이 되면 실패도 자양분이 된다는 걸 알지만, 당장 나중인 지금은 물음표 투성이의 미래만 눈앞에 남아있다. 물음표를 없애려고 했던 노력이 물음표만 남긴다. 안다. 진짜 안다. 성공은 1%만 한다. 99%는 실패한다. 기획이란 일은 99%의 불덩어리로 물 먹은 이불 뒤집어 쓰고 통과하려는 것이란 것도 아는데. 그냥 헛헛한 하루다. 작은 뮤지컬을 봤다. 관객이 많지 않은 작은 뮤지컬. 근데 그 무대에서도 목이 찢어져라 부르는 배우 분이 기억에 남아 이름을 검색했다. 뭔가, 작은 무대와 미적지근한 관객들의 반응에 현타를 느끼면서도 결국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노래 뿐이니까 지른다고 느꼈다. 내 마음 상태가 회의적이니까 그게 반영된 해석이겠지만. 현타를 느껴도 어쩌겠는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그치만 오늘만 조금 시무룩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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