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iN]'천치전능' 송래현 작가 "자극 과잉시대, 웹툰도 변한다"
노컷뉴스
- 학원 일진물, 판타지 등 웹툰 장르 편중에 대해 피로감을 지적하는 독자들도 많은데?
= 장르는 식성과 비슷하다. 식성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호불호가 있을 뿐이다. 만화는 자극이 강한 매체다. 요식업도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나. 옛날에는 피자나 햄버거, 어느 때는 타이 음식, 양식, 일식 등 유행하는 입맛이 시대에 따라 변한다. 다만 강한 밀도의 자극은 그 사람들에게 엄청 큰 만족을 주지면 역치에 이르면 더 이상 만족을 주기 어렵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3~5년 주기로 웹툰 장르 선호도가 바뀌는 것 같다. 초기의 웹툰 그림체도 지금과 많이 달랐다. 지금은 인기 장르인 판타지나 무협물도 없었다. 2010년 이전만 해도 고순도의 만화는 출판만화에 있었고 온라인 기반의 웹툰은 생활툰이나 병맛툰처럼 캐주얼하고 웃긴 콘텐츠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산업 규모와 인력 자원의 규모가 커지면서 다양한 장르나 형식을 수용할 수 있게 됐다. 시장이 커지면서 자본이 유입되면서 블록버스터 작품이 가능해졌다. 유행은 바뀐다. 스케일이 큰 작품이 인기를 끌다가도 최근 생활툰이나 로맨스처럼 소프트하고 가벼운 스토리가 다시 유행할 수도 있다.
학원 일진물이나 판타지가 여전히 인기인 이유는 단순하지 않을까. 힘에 대한 욕구, 그게 인간의 본능 아닌가. 어떤 환경과 배경, 스토리에 따라 어떻게 싸우냐만 다를 뿐 욕망과 본능의 장르 선호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우리 뇌가 그런 자극을 원하니까. 생존 본능의 욕구, 욕망에 대한 결핍은 누구에게 있다. 우리는 획일화된 학교와 군대 문화를 경험해오지 않았나. 거기서 오는 무력감과 공포, 두려움을 마주한 경험이 있다. 그럴수록 힘에 대한 갈구는 더 커진다. 그것을 건강한 방향으로 풀 수 있다면 좋은데 누구나 모든 결핍을 채울 순 없으니 캐릭터와 스토리를 통해 대리 만족이 큰 효능감을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본성이다. 이것의 소프트 버전이 해리포터 시리즈 아닐까.
송래현 작가. 김민수 기자
- 장르가 유행을 타는 이유는 무엇인가?
= 가장 큰 이유는 시대마다의 결핍이 다른 것 같다. 먹고 사는 생존이 문제일 때는 돈 버는 것이 중요했고, 사람의 기본권이 문제일 때는 민주화가 중요하지 않았나. 과거에 그룹 지오디(god)가 '재민이'를 키우는 육아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 때가 있었다. 지금은 결혼이나 육아에 관심 없고 출산율이 0.6%대까지 곤두박질 쳤다. 시대에 따라 육아 문제에 대한 결핍, '무한도전'이나 '1박2일'처럼 친구들과 우르르 놀러 다니는 것에 대한 결핍, '냉장고를 부탁해'처럼 혼자서 '냉장고 파 먹는' 거에 대한 결핍이 있었고, 그 '끝판왕'이 '나 혼자 산다'라고 본다.
계속해서 요구되는 욕망이 달라지면서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쾌락·자극·감동·재미의 방식도 계속 바뀌는 것 같다. 대표적인 작품이 윤태호 작가님의 '미생'이다. 현대인의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시대 정신에 맞게 잘 담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조직과 역할 안에서 잘 드러나지 않더라도 1인분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공감'을 산 작품이다. 지금은 자존감을 갖기 어려운 시대 아닌가.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 그럼 향후 웹툰 트렌드는 어떻게 흘러갈까?
= 이 장르 유행이 짧은 시간 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좀 비관적이다. 10대 우울증에 관한 책을 봤는데, 아이폰(스마트폰)과 SNS(소셜 미디어)가 나타나면서 이 우울증을 키웠다고 한다. 최근 인기인 숏폼의 경우 10초 안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재미없으면 그냥 바로 넘겨버린다. 웹툰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연속적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는데 큰 서사나 호흡이 긴 작품을 우리는 대작이라고 하지만 요즘은 이 같은 긴 호흡을 독자들이 쉽게 지루해 한다. 앞으로도 어떤 감동이나 큰 서사를 다루는 이야기보다는 숏폼 형태의 더 큰 자극을 추구하는 이야기들이 더 많이 생산되고 소비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 '도파민 디톡스'가 유행이라고 하던데. 디지털 콘텐츠 소비가 늘어나는 시대에 갈수록 강렬한 자극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여기에서 해방될 수 있는, 우리의 뇌를 안정화 시키는 콘텐츠나 장르가 함께 유행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자극의 과잉 시대 아닌가.
- '자극 과잉시대'라는 말에 공감한다. 해소할 수 있는 도파민 디톡스 콘텐츠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 수많은 미디어가 있다.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 안에 웹툰도 주요 경쟁자가 되면서 우리가 미디어에 노출되는 시간도 길어졌고 자극도 높아졌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인스타그램 일러스트레이터 키크니 작가님이 출연한 적이 있다. 이렇게 자극 과잉의 시대에도 이미지 10컷까지만 올릴 수 있는 인스타그램에 키크니 작가님 본인이 느꼈던 경험 소재나 사연 제보를 통해 힐링 카툰을 그린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섹스나 폭력과 같은 원초적 본능 말고도 내면의 치유나 갈등, 고민에 대한 사연을 접하면서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사고 따뜻함을 얻는다. 서로 흩어져 있는 많은 작가가 이처럼 모이고 연결되는 공간에서 하나의 폭발적인 반응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분의 용기가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저와 많은 작가들에게도 용기가 됐다. 아주 멋졌다.
https://www.nocutnews.co.kr/news/6107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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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30일 오후 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