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흑백요리사 - 자, 마지막 스물일곱 번째 두부 요리를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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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의 팽팽함은 점점 느슨해졌다. 흑과 백의 대비는 옅어졌다. 각본대로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깔끔한 엔딩이 좋았다. 흑백요리사를 끝까지 보고 느낀 점 4가지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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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나의 상상을 혼자서 현실로 만드는 능력이 부럽다. 재료를 보고 요리를 정한다. 혹은 요리를 상상하며 재료를 준비한다. 순서는 달라도 모두 셰프 한 명의 손에서 요리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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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일도 혼자서 할 수 없는 세상이다. 상상한 요리를 혼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부러웠다. 물론 현실의 주방은 그렇진 않다. 그럼에도 혼자 해낼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주방의 리더가 된다. 전체를 보며 동시에 디테일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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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의식은 무의식을 절대 이길 수 없다. 무한 요리 지옥의 두부 요리의 반복은 보는 사람도 정신이 없다. 30분은 요리만으로도 짧은 시간이다. 어떤 요리를 만들어야 하나. 그저 본능처럼 찾아오는 레시피를 바로 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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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기, 운전하기는 누구나 쉽게 배우는 기술이다. 연습하면 내 것이 된다. 배움은 곧 무의식화되는 것이다. 내가 의식적으로 핸들을 꺾고 브레이크를 밟는 게 아니다. 무의식이 하는 일이다. 목적지까지 어떻게 왔냐고 묻는다면? 설명하기 어렵다. 그냥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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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의식적인 행동도 무의식을 이길 수 없다. 습관과 같다. 대가들에게 위대한 작품의 비결을 묻는다. 대답은 늘 비슷하다. 내가 한 게 아니다. 영감이 찾아왔다.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올랐다. 겸손한 대답이 아니다. 그게 사실이기에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믿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경험해 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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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셰프는 무한 요리 지옥, 제작진은 무한 편집 지옥. 돌이켜보면 초반부터 캐릭터와 서사를 강조했던 이들이 끝까지 살아남았다. 결말의 힌트가 너무 강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서사가 끊겨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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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대 카메라의 장면과 대사를 따고 스토리를 이어붙이는 일. 상상도 안된다. 엄두가 안 나는 일이다. 어쩌면 중후반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두부 요리 못지않은 편집 지옥을 겪고 작품을 만들어낸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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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이 결말을 알게 된 지금.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본다면 보이지 않던 힌트가 보이진 않을까. 궁금하다. 숨겨진 이스터에그라도 있진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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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사람은 결코 이성적이지 않다. 객관적인 판단과 결정은 없다.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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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마지막 스물일곱 번째 두부 요리를 먹겠습니다. 마지막 두부 요리를 시식하며 백종원이 말한다. 만드는 사람 모두 두부에 신물이 났다. 하지만 심사하는 두 명도 마찬가지다. 정말 요리 자체로만 심사할 수 있을까. 규칙은 규칙일 뿐이다. 판단은 사람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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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원하는 걸 준다. 모든 장사와 사업의 본질이다. 스물여섯 개 요리를 먹고 두부에 질려있는 심판에게 디저트를 내놓는 일과 같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요리 대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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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고 싶다면 내가 아니라 상대를 봐야 한다. 그 상대는 고객일 수도 있고, 적이나 경쟁자일 수도 있다. 에고는 늘 양날의 검이다. 없어도 안 되지만, 너무 강하면 절대 성공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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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지 않은 담백한 엔딩이 좋았다. 우승자 흑수저는 명예를 받고, 준우승 백수저는 서사를 받았다. 참여한 100명의 셰프와 제작자, 넷플릭스 그리고 소비한 우리 모두 행복한 요리 계급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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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0일 오후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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