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멤버십 클럽의 등장은 특이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1. 창의적인 멤버십 클럽으로 불리는 '소호 하우스'를 이해하려면 멤버십 클럽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2. 예로부터 멤버십 클럽은 부와 권력 뒤에 존재했다. '미토라 밀교', '프리메이슨 집회소', 예일대학교의 '해골단(Skull and Bones Society) 등은 모두 자신들의 권위와 입지를 지키기 위한 은밀한 모임에 가까웠다. 3. 19세기 이후에는 기득권을 얻은 자들의 쾌락을 위한 (멤버십) 모임이 많았다. 특히 영국은 런던 세임트 제임스 파크 인근에서 많은 모임이 열렸는데, 부동산이나 재산 상속으로 갑자기 부를 축적한 '누보 리치(신흥 부자)'들이 모여 도박과 매춘을 일삼았다. 4. 20세기 초부터 런던에 생긴 멤버십 클럽은 컨트리클럽의 기반이 되었다. 시민권의 강화는 대중들이 정치, 레저 활동, 스포츠, 예술, 문학과 같은 사회 전반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런 활동은 여전히 기득권층의 모임이란 전제가 붙었다. 5. 귀족을 위한 '비사교적인' 모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젠틀맨스 클럽이란 새로운 제약을 통해 백인 우월주의 사상과 남성 중심 사회의 그릇된 통념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6. 20세기 초 활발했던 젠틀랜스 클럽이 (전통적인) '컨트리 클럽'이라면, (소호하우스 등) 21세기말에 태동한 멤버십은 '시티 클럽(city club)'에 가깝다. 7. 시티 클럽의 멤버들은 엘리트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높은 멤버십 비용을 지불하기보다는, 도심 지역에서 평소처럼 친구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방식을 선호한다. 8. 일각에서는 이런 시티 클럽의 태동을 안티태제가 아닌,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승마와 골프 등 전통적인 레저의 인기가 쇠락하고 있다는 점과 각종 문화 프로그램이나 콘서트, 강의 등을 즐기는 밀레니얼 시대의 등장이 멤버십 클럽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9. 그리고 이를 대변하는 (가장) 대표적인 클럽이 '소호 하우스(Soho House)'다. 10. 소호 하우스의 창립자, 닉 존스는 1980년대 후반 소호 지구에서 자신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세 단어는 '먹기, 마시기, 낮잠'이며, 이 3가지는 그의 삶의 목적이자 지표다. 11. (그래서) 레스토랑은 그에게 좋은 음식과 술이 있는 공간인 동시에 '브레이크 타임'을 이용해 낮잠을 자는 쉼의 공간이자,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였다. 12. 실제로 그의 첫 번째 사업은 1980년대 후반에 시작한 소규모 레스토랑 '오버 더 톱'이었다. 하지만 당시 그가 운영하던 레스토랑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13.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전 너무 안일했고, 고객은 정말로 똑똑했죠. 무엇을 배웠느냐고요? 고객이 원하지 않은 건 하지 말자. 레스토랑의 근본은 새로운 서비스 방식을 창조하는 게 아닌, 진심이 담긴 음식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14. (한 번의 실패 후) 닉이 자신의 두 번째 레스토랑 '카페 보엠'을 연 것은 1992년의 일이다. 이 레스토랑은 소호 지구에서도 프랑스 시인들이 자주 오가던 거리인 올드 콤프턴 스트리트에 위치한 타운하우스 건물 1층에 자리했다. 15. 닉은 카페 보엠이 '프랑스 시인들의 편안한 쉼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벼운 식사 메뉴를 비롯해 프랑스 전통 요리 방식인 콩피를 이용한 음식과 달팽이 요리인 에스카르고 등을 선보였을 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칵테일과 맥주, 재즈 공연 무대도 마련했다. 16. 손님이 익숙하지 않은 방법을 강요하기보다 손님이 가장 익숙하게 여기는 것을 마음 편히 즐기도록 한 것이 카페 보엠의 성공 요인이었고, 이는 오버 더 톱의 실패로 터득한 교훈이었다. 17. 손님을 진심으로 보살피는 것, 닉이 인터뷰를 진행할 때 마다 언급하는 접객의 의미다. 그리고 그 실천이 바로 1995년에 선보인 창의적 멤버십 클럽, 소호 하우스다. 18. 닉 존스는 권력과 부의 중심으로 모인 (기존의) 남성 위주의 멤버십 클럽과는 달리, 영화나 음악 산업 등에 종사하는 창의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지극히 프라이빗한 멤버십 클럽을 열었다. 19. 사실 닉은 멤버십 클럽에 가입해본 적도, 경험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 예술적인 사교 모임은 (기존의 컨트리 클럽과는 달리) 평등주의에 입각했고, 이는 소호 예술가들의 성향과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20. 당시 소호 하우스가 내서운 건 지위 상승을 위한 전략 모임이 아니라, 창의적인 사람들과의 교류와 독서 모임, 새로운 문화나 사회 현상을 탐구하는 지식의 공유였다. 21. 당연하게도 성 소수자를 포함한 성별과 인종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문이 열렸고, (그렇게) 소호 하우스는 런던 멤버십 클럽의 판도를 뒤집었다. - 매거진 B <소호하우스> 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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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8일 오전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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