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트는 왜 돈이 되는 걸까?" "왜 모두가 퀀트를 하지 않는가?" 이 두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심리와 본성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 퀀트는 어떻게 보면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인본주의적 접근으로 금융시장을 바라봐야만 하는 사람이다. 퀀트가 매일 들여다보는 데이터, 그 금융시장의 데이터는 결국 시장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이 모여 표출해낸 행동들이 기록의 형태로 남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데이터에는 사람들의 행동방식이 그대로 녹아들어 가 있으며, 따라서 과거 데이터는 과거 문헌이나 유물 같은 역사적 사료들과 마찬가지로 금융시장 역사의 흔적 그 자체다. 그 흔적은 인간의 행동이 만들어낸 것이며, 이러한 흔적 안에 돈을 벌 수 있는 힌트가 숨어있다. 퀀트가 흔히 말하는 팩터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힌트들을 찾아 나름대로 체계화를 시켜놓은 산물이다. 그렇기에 인간 행동 동기를 파악하고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퀀트에게 있어서는 필수적이다. 역사학자가 과거 문헌을 들춰보며 역사 속에서 유의미한 교훈과 인사이트를 찾아내고자 하는 것처럼 퀀트 또한 과거 데이터를 통해 금융시장의 역사를 반추해 보고 또 그 속에서 돈을 벌기 위한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따라서 모름지기 퀀트라면 프로그래밍과 수학, 통계뿐만 아니라 역사 공부를 가까이해야 한다. 테크닉은 돈을 벌기 위한 아이디어, 즉 수익화의 본질이 아닌 수단적 도구일 뿐이다. 실제로 금융시장에서 돈을 벌어내는 것은 아이디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어느 순간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금융시장에 대한 공부, 금융 역사에 대한 공부, 인간에 대한 공부를 지속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특히나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 있지 않다면 사실 팩터라는 것을 활용해 꾸준한 수익을 내겠다는 생각을 실현시키기가 요원해진다. 왜냐하면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금융시장, 즉 타자를 이해하는 것 이외에도 추가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포함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퀀트라는 방식을 사용하려는 나조차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며, 그렇기에 나 또한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지고 있는 본능과 본성으로부터 절대로 자유롭지 못하다. 시카고학파가 말하는 것처럼 효율적 시장 가설은 결국 현실이 아닌 이데아에 지나지 않는다. 불확실성 하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절대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인 존재들이 아니다. 퀀트가 돈이 되는 이유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 즉 비이성적 행태를 이해하고 이를 역이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퀀트가 돈이 됨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퀀트를 하지 않는 이유는 퀀트라는 방식이 인간의 본능적인 심리 행태에 역행하는 의사결정을 하도록 계속해서 종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퀀트는 트레이딩을 하는 내내 심리적 불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의사결정 방식이다. 이는 테크닉만으로는 충분조건이 될 수 없으며 이러한 심리적 불편감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하는 그 무언가가 필요함을 암시한다. 만약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 무작정 금융시장에 뛰어든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테크닉을 시장에 적용해 유의미한 수익을 창출해 보기도 전에 시장에서 퇴출될 확률이 높다. 시장에서 게임을 지속하지 못하고 소위 '강퇴'가 되는 경우는 대부분 언노운 언노운(Unknown Unknown), 즉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 대다수인데, 이는 테크니컬한 것들을 모른다는 것보다는 스스로가 심리적인 준비 혹은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러한 종류의 언노운 언노운은 사실 개인투자자뿐만 아니라 투자나 트레이딩을 자신의 업으로 삼고 있는 제도권 내의 플레이어들조차 쉽사리 간과하고 있는 성질의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순전히 기계적으로 혹은 알고리즘적으로만 접근할 것 같은 퀀트라는 방법론이 사실은 철저히 인본주의적 관점에 기반한 메타인지 플레이여야만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퀀트라는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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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0일 오후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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