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의 예산시장에서 '삐에로쑈핑'이 오버랩 된다

요즘 백종원 대표의 '고향 전통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로 화제인 예산시장을 찾았다. 평일 오후임에도 긴 셀카봉을 들고 다니는 젊은이들을 보며 "내가 '핫플레이스'에 왔구나" 실감이 났다. 예산시장은 인스타그램에서나 볼 법한 세련된 뉴트로 감성 가게들이 10여개 있었다. 더본코리아 '새마을식당'과 비슷한 감성의 커피전문점, 닭볶음집, 국숫집에서 백종원 대표의 '손길'이 느껴졌다. 정말 문전성시였다. 중국집, 닭볶음집, 칼국숫집 등은 오후 2시인데도 벌써 "재료가 소진됐다"며 문을 닫았더라. 치킨집은 월드컵 경기일도 아닌데 "한 시간치 주문이 밀렸다"고 해서 되돌아왔다. 예산시장에서 50년간 건어물 가게를 해온 아주머니는 "20~30년 만의 최대 인파"라고 했다. 과연 백종원 대표의 영향력은 놀라웠다. 그런데 비외식 업종의 가게에 들어가보니 상황이 전혀 딴판이다. 생활잡화를 파는 OO상회, 속옷 가게 사장님들은 이 와중에도 폐업을 고민중이었다. 치킨집은 1시간 줄을 서는데, 그 바로 옆 속옷 가게는 하루에 양말 한 개도 못 팔고 있단다. 먹거리만 잘 되는 업종별 양극화다. 사실 먹거리도 예산시장에만 파는 건 거의 없었다. 그냥 요즘 화제니까 가보고, 간 김에 출출하니 사먹는거지, 다시 갈 이유는 없다는 얘기다. 이대로면 결국 먹거리도 오래 못 가고 반짝 인기로 끝날 것이 자명해 보였다. 작년에 현지 취재했던 일본 전통시장 '쇼와노마치'는 달랐다. 예산시장은 추억을 자극하는 '뉴트로' 콘셉트로 승부했다는 점에서 2000년께 일본 오이타현 분고타카다시의 쇼와노마치를 참고한 듯 한데, 큰 차이점이 있다. 첫째, 전통시장 혁신의 주체가 쇼와노마치는 상인회, 예산시장은 백종원이란 걸출한 외식사업가다. 시장의 주체들이 똘똘 뭉쳐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니 리뉴얼 내용이 먹거리 위주고, 전체가 아닌, 일부만 혁신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둘째, 뉴트로도 반쪽이다. 일본은 1926년부터 1989년까지 재위한 일왕의 이름을 따 '쇼와노마치(쇼와 시대의 거리)'로 짓고, 1950~1980년대에 쓰던 각종 생활용품과 빛바랜 영화 포스터 등을 진열했다. 시장 전체를 그 시절로 돌려놓기 위해 후쿠오카에 사는 수집가를 삼고초려 해서 10만점 넘는 골동품 컬렉션을 확보, 박물관을 만들어 명소로 만들었다. 반면, 예산시장은 겉만 뉴트로다. 여전히 키오스크를 쓰고, 상인은 손님과 대화 한 마디 없고,, 과거의 정감 넘치던 진짜 '옛날 시장'은 없다. 셋째, 리뉴얼한 예산시장 말고는 볼 게 없다. 예산시장은 서울에서 2시간 가량 걸려 교통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 다녀오면 거의 하루가 간다. 그렇게 큰 맘 먹고 갔는데 예산시장 1~2시간 둘러보고 나면 볼 것도, 즐길 것도 없다. 이제부터 뭘 새로 만들려 한다는데 글쎄다.. 처음부터 유명 관광지와 인접한 전통시장을 이렇게 살렸으면 어땠을까. 쇼와노마치는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유후인과 벳푸 온천이 있다. 관광 스팟보다는 관광 벨트를 만들어야 관광지의 가성비가 높아진다. 이런 점에서 예산시장은 제2의 '삐에로쑈핑'이 되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삐에로쑈핑은 신세계가 일본의 돈키호테를 따라서 만들었다가 1년여 만에 처참하게 실패한 사례다. 당시 나는 돈키호테 부사장을 인터뷰하고 성공비결을 기사로 썼기에, 돈키호테의 외양만 따라한 삐에로쑈핑이 오래 못 갈 것이라고 기사를 썼고 예상은 적중했다. 돈키호테는 기본적으로 지점장은 월급의 50%, 직원은 30%, 알바생도 10%는 성과와 연동해서 받는 인센티브 제도다. 대신 무엇을 얼마에 어떻게 팔 지는 상당한 자율권을 준다. 갓 입사한 알바생도 매대 하나는 자기가 알아서 채워 팔도록 한다. 창업주가 주인 정신을 강조해서 '소사장' 체제를 적극 반영한 것이다. 이런 파격적인 보상 체제는 점장과 직원들이 스스로 아마존과 비교해서 최저가로 상품을 떼오는 경로를 찾도록 뛰어다니게 했고, 매장별로 상품을 특성화하는 효과로도 이어졌다. 그런데 삐에로쑈핑은 그냥 월급쟁이들이 만든 거다. 아마존보다 저렴하지도, 다른 매장에선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상품도 없었다. 돈키호테의 성공비결은 독특한 콘셉트와 과감한 보상 시스템인데, 삐에로쑈핑은 돈키호테의 외관만 흉내낸 것이다. 미쓰하시 시게아키 전 일본 마치즈쿠리협회 이사장이 저서 '전통시장 이렇게 살린다'를 통해 쇼와노마치의 성공비결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상점가는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각 상점가마다 번영 조건, 침체 요인, 활성화 방법이 모두 다르다. 쇼와노마치는 신설 테마파크가 아닌, 기존 상점가 거리에 쇼와 시대 마을의 분위기를 재현함으로써 지역 자원을 살려 관광 산업력을 만든 사례다." 이덕훈 한국전통시장학회장(전 한남대 총장)도 예산시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백종원 대표는 선친 때부터 예산에서 살아온 토박이로서 해당 지역 특성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스토리텔링에 사업가로서 백 대표의 역량과 열정이 더해져 초기 흥행에 성공한 것은 높이 평가한다. 단, 관광지로서 지속 성장하려면 교통 접근성, 주변 인프라, 볼거리, 즐길거리, 놀거리 등 문화 콘텐츠가 모두 어우러져야 한다. 예산시장이 지속적인 재방문을 이끌어내려면 이런 부분을 더 채울 필요가 있다."

백종원 예산시장 vs 쇼와노마치 - 한국과 일본의 전통시장 되살리기 차이점(둘 다 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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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 예산시장 vs 쇼와노마치 - 한국과 일본의 전통시장 되살리기 차이점(둘 다 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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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7일 오전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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