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과 해외 팬덤 차이가 '조직화된'이거나 '충성도 높은'이 되면 곤란하다고 본다. 사실 국내외에서 팬덤 논의 자체가 그리 발달하지 못했다. 20세기 영미권의 팬덤은 주로 영국 펑크 무브먼트와 하위문화/로컬/인디펜던트 관점으로 연구되었는데 '느슨한 공동체' 같은 얘기는 그때 나왔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영미권 팬덤도 조직화되고 단단하다. 2015년 이후에는 매거진이나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팬'을 중요하게 다뤘다. 특히 오바마-트럼프를 거치며 mz세대 이슈와 맞물려 정치적 발언/행동이 팬덤의 결집 요소로도 작동했다. <타임> <뉴요커> <뉴욕 타임즈> <가디언> 등에서 'stan'이란 단어로 검색해보라. 2. 한국의 팬덤 논의는 조금 다르다. 역사적으로도 사실상 '팬 당사자'는 타자화되었다. 미디어에서도, 기획사에서도, 기업에게서도, 그러니까 사회 전반에서 몽땅 타자화된다. 팬덤의 이해를 위해서는 이 맥락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한국과 해외의 팬덤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지점이다. 3. 한국의 팬덤은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존중' 받은 적이 없다. 그나마 '존중' 받은 경험이라면 '조건부'였을 때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들' 같은 인정을 받을 때나 '팬덤도 좋은 일을 하네'라고 인정받았다. 그외엔 사실 팬덤의 활동이 뭔지, 팬 경험이 무엇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알지도 못했으면서 오직 '타자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청소년' '여성' '연예인' 같은 맥락이 몇 겹이나 겹쳐쳤다. 10대 소녀 중심으로 구성된 아이돌 팬덤은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타자성의 총합이라고 해도 좋았다.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팬덤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대충 '좋아하는 오빠들을 위해서 여자애들이 단체로 00하는 것'이라는 전제에서 진행됐다. 이거, 얼마나 편협하고 몰이해적인가... 4. 한국 사회는 연예인을 줄곧 '2등 시민'으로 취급하며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특히 정치적, 사회적 목소리)를 낼 때는 가차없이 응징했다. 그 중에서도 아이돌은 2등시민 안에서도 더 하위계급 취급을 받았으니, 10대 팬덤은 말할 것도 없이 이중삼중의 프레임으로 이해되었다. 팬덤이 '우리를 존중하는 게 어렵다면 있는 그대로 봐주기만 해달라'는 마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은 서양과 달리 계급, 정체성 이슈가 적은 대신 이런 '소셜 포지션'에 따른 갈등 양상은 빈번히 있었다. 한국의 팬덤은 사실상 '소수자 투쟁'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 5. 해외 팬덤은 대체로 박해받는다는 정서적 구심점이 없는 대신, 문화산업을 만들고 키웠다는 정서적 교감은 있다. 팝 가수, 록 스타 뿐 아니라 <스타워즈> <스타트랙> 다 마찬가지다. 대중문화 산업은 오직 팬덤이 키운다. 그러나 한국 팬덤에서는 '박해받는다는 정서적 구심점'이 제일 중요하다. 이것이 강력한 동기로 작동하며 흩어진 팬들을 하나로 모은다. 팬덤이 청소년의 탈선이라는 논지가 대중화되면, 돈이든 시간이든 자신의 자원을 모아서 선행을 꾸준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었다. 지금은 완전히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총공' 역시 이 맥락에서 중요한 전술 중 하나였다. 무슨 수를 쓰든 차트의 권위에 기대면 평가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그게 한국 팬덤의 역사다. 다시 말해 한국 팬덤의 가장 큰 특징은 '체계화/조직화'가 아니라 '정서적 공동체'라는 점이다. 6. (방탄소년단이 아니라) '아미'는 바로 이 점을 세계화시킨다. 다만 인정투쟁보다는 좀 더 발전된 형태로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내부의 동기가 된다. 이것은 암묵적이고 자발적인 문화적 관습이다. 나는 한국의 팬들이 공유하던 이 정서가 글로벌 수준으로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이 현재의 중요한 지점이라고 본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키워드는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것이 되었지만, 사실상 이것은 오래 전부터 한국 아이돌 팬덤의 거대한 방향성이었다. 나는 이게 팬들을 타자화하지 않는 동시에 팬덤 문화를 신화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조금 더 정확하게 팬덤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관점이자 태도라고 생각한다. 7. 덤으로. 팬덤은 기획사와 아티스트 사이에서 매우 모순적인 위치에 놓인다. 팬덤은 기획사가 아니라 아티스트에 밀착될 수밖에 없고 기획사는 팬덤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이 관계에서 셋 모두가 모순된 입장에 빠지는데 그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본래적인 맥락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빅히트의 '아티스트와 팬덤에 봉사한다'는 메시지는 이례적이면서도 매우 중요하다. (동의하든 하지 않든) 나는 이 스탠스가 음악 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참고할 만하다고 본다.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플랫폼의 포지셔닝이기 때문이다.

Woojin 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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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6일 오후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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