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아마존 프라임, 디즈니 플러스를 비롯한 스트리밍 서비스의 경쟁을 다루는 책. 미디어/콘텐츠 회사에서 그래도 일을 해본 입장에서 읽으면서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1. 회사가 이미 한 시장에서 강력한 성공을 거뒀다면 새로운 사업에서 성공하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새로운 회사가 시장을 만드는 게 더 쉬울 수도 있다. 넷플릭스는 스트리밍만 죽어라 잘 하면 된다.하지만 넷플릭스의 경쟁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에겐 이미 너무나 돈을 잘 벌어오는 기존 사업이 있었다. 결국 시장이 급변할때가 되서야 피를 토하면서 스트리밍들을 준비했으나 반 이상이 실패했다. 이들이 잘못해서일까? 단순히 기득권이나 안주 이런 문제가 아니다. 그냥 사업의 속성이 그런 것이다. 그 속성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2. 2010년대 당시 내가 다닌 미디어 회사들은 시장 변화에 대한 고민이 컸다. 방송사와 네이버 간 콘텐츠 공급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네이버 TV의 앞날은 불투명했다. 방송에 투여된 리소스와 발생 수익을 분배해서 유튜브에 투자하기엔 시기상조로 보였다. 심지어 네이버 계약은 그걸 가로막고 있었다.
소비패턴이 바뀐다는 건 알았지만 어느정도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왜냐면 종편/케이블 채널들이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으니까. TV시장은 온라인만 적절히 잘 엮어놓으면 계속 흘러갈 것으로 보였다. 그 뒤로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갔고 당시의 케이블/종편 브랜드들 중 앞날이 희망적인 곳이 잘 없다. 출산율 하락 시점에 사교육 시장은 연 10% 넘게 성장하는 상황 같달까.
3. 대규모 사업이 아니어도 흔한 풍경이다. 새로운 사업을 해야 할때 부딪히는 난제다. 내가 있는 커머스 시장의 크고 작은 회사들도 매한가지다. 공동구매 잘 하는데 자사몰을 왜? 자사몰 팔아야 하는데 쿠팡을 왜? 등등. 현재의 부를 어디까지 헐어서 미래에 투자해야 하나? 영원한 미스테리다. 온라인 여력이 없는 회사들은 한때 쿠팡 유통을 진행하는 것 만으로 온라인 사업이 성공적이라 자축했지만 몇년 뒤 쿠팡에 뒷덜미를 잡혔다. 공동구매 잘된다고 신났던 브랜드들은 조용히 울면서 D2C를 타진한다.
4. 다만 시장은 항상 흐르고 변하기 때문에 ‘과거의 성공‘이 다시 지금의 뚝심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책 중반 이후로 넷플릭스에 대한 다른 미디어사의 반격이 시작되는데, 결국 이익이 나는 사업이 있으니 그 돈으로 스트리밍에 필요한 기술을 인수도 하고 투자도 공격적으로 진행한다. 손실은 나지만 버틸 힘이 존재하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스트리밍에 올인하기 떄문에 강력한 파괴력을 지녔지만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그것만 있기 때문에 오히려 위기일 수도 있는 셈이다.
5. 책은 콘텐츠 업계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을 아주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기라성 같은 회사들의 고군분투를 보고 있으면 리더의 자질, 소비자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이 사업을 이끈다는 비합리적 기대를 걷어내게 된다.
남는 것은 좀 더 건조하고 거리감 있게 시장을 돌아볼 수 있는 단초이다. 이 모든 결정이 그다지 합리적으로만 내려지지도 않는다.성공한 기업도, 실패한 기업도 사실 스타트를 끊을때는 다 나름의 전략전술들이 있었고, 레거시가 있었다. 난다긴다 하는 전문가들이 달려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과반 이상이 실패했다. 그렇다면 기업의 성공에서 좋은 전략의 기여도라는 건 결국 리뷰에서나 드러나는 게 아닌가?
6. 책을 읽으면서 지난 시간의 경력도 다시 돌아봤다. 내가 왜 미디어/콘텐츠 업에 재미도 못느끼고 성취도 없었는지 알게 됐다. 첫째, 이 업은 콘텐츠를 사랑해야 잘 할수 있다. 내가 비제작 직군이어도 콘텐츠의 탄생과 흥행에 참여한다는 데서 쾌감을 느낄 정도로 좋아해야 한다.
둘째는 사업의 단위가 너무 크다. 오고가는 돈은 최소 수백억 단위고 기업의 규모도 엄청나다. 대규모의 사업이 생태계의 주축을 담당한다. 한 개인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이 거대 조직 외에는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7. 셋째. 결국 크리에이터 위주의 사업이다. PD,감독,연예인 등의 크리에이터가 매출 핵심일 때, 비제작직군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지고 일은 단순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비제작으로서 미디어 업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존재는 사업기획 내지는 제작자의 포지션인데, 그건 또 결국 사업가의 길이다. 나는 콘텐츠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고, 대기업도, 크리에이터도 싫었으며, 사업가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길은 뻔했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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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일 오전 9:58
흥미롭게 잘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