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조합형 한글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그 아름다움은 단순히 예쁜 글꼴이나 정갈한 종이 위의 자소 배열에서 끝나지 않는다. 진짜 매력은, 정밀한 정보 구조와 이산 수학적 규칙성 속에 숨어 있다.
초성 19자, 중성 21자, 종성 28자(받침없음 포함)의 조합으로 구성된 조합형 한글은 이론적으로 가능한 모든 조합을 체계적으로 담아낸, 말 그대로 한글 문자 컴파일러와도 같다.
유니코드에서 한글은 U+AC00(가)부터 U+D7A3(힣)까지, 무려 11,172개의 음절로 정의되어 있는데, 이 조합 방식은 다차원 배열의 인덱싱 구조와도 흡사하다. 예컨대 ‘한’이라는 글자는 초성 ‘ᄒ’, 중성 ‘ᅡ’, 종성 ‘ᆫ’으로 구성되며, 다음 공식을 통해 유니코드 포인트가 계산된다:
U+AC00 + (초성 인덱스 × 588) + (중성 인덱스 × 28) + 종성 인덱스
이는 단순한 문자 처리 방식이 아니다. 초·중·종성이라는 세 개의 축을 갖는 3차원 좌표 공간에서 유니코드 포인트로 압축하여 출력하는 고성능 한글 출력 엔진이라 할 만하다. 15세기에 고안된 문자 체계가 현대 알고리즘 수준의 체계를 이미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조합형이라는 표현은 현대 디지털 기술이 정의한 것이지만, 그 기저에는 분해와 조합이 가능한 체계적 자모 설계가 존재한다. 즉, 세종대왕은 문자라는 고급 개념을 기계적으로 구현 가능한 형태로 설계한 엔지니어였던 셈이다.
어찌 보면, 조합형 한글은 600년 전에 만들어진 한국어라는 언어의 바이트코드다. 문자 이전의 자모, 음소 이전의 정보 구조. 다르게 말하자면 세종대왕은 나랏말을 만든 게 아니라, 나랏말을 코드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세종대왕은 킹 갓 프로그래머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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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8일 오전 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