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에 부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열정이 부족해서였을까? 출근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니, 부끄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후배들의 실수나 잘못을 질책하고 짜증을 냈던 순간들이다.


신영복 선생이 말했듯이 70%의 자리가 득위의 비결이다. 지금 내 능력과 열정의 70%를 써서 해낼 수 있는 자리가 내 자리여야 한다. 그래야 남은 30%로 ‘나’를 지킬 수가 있다.


순간 씁쓸해진다. 그 짧은 순간에도 나를 변명하고 싶은 욕망에 빠져든다. ‘나 정도면 양반이야. 얼마나 많은 보스들이 직원의 실수에 인격 모독성 질책을 쏟아내는데 말이야’라는 변명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나만 모를 뿐, 내가 그들 중 한 명이었던 순간들은 내 기억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착각의 시절이 있었다. 잘못과 실수는 꼬박꼬박 지적하고 질책해야 팀의 성과가 높아진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시절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착각이라기보다는 자기 합리화였던 것인데, 상당수 보스들은 지금도 100% 온전히 그렇게 믿고 있다.


자신이 직원들에게 욕을 먹는 위험을 무릅쓰고, 지적과 질책을 통해 그들의 실수와 잘못을 바로잡았다고 확신한다. 과연 그럴까? 아닐 가능성이 크다. 질책을 받은 직원들이 실수와 잘못을 숨기게 됐을 뿐이다. 조직에서 실수와 잘못이 오히려 늘고 있는데, 보스만 이를 모를 따름이다. 보스는 점점 ‘바보’가 되어 간다.


그렇기에 실수와 잘못을 보고받으면 리더는 일단 안심부터 해야 한다. ‘내가 그렇게 나쁜 보스가 아니구나’, ‘우리 팀원들은 나를 바보로 만들 생각은 없구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실수와 잘못이 보고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 좋은 리더가 있는 좋은 팀일수록 그렇게 된다.


1996년 미국 하버드대 연구자였던 에이미 앤더슨은 8개 병동 간호사들의 투약 실수를 조사했다. 앤더슨은 좋은 리더, 좋은 동료와 함께 일하는 팀일수록 실수가 적게 보고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정반대였다.


리더인 관리 간호사(nurse manager)가 높은 기준과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는 병동일수록, 관리 간호사가 팀원들에게 적절한 코칭을 제공하며 팀원들이 그를 필요로 할 때 항상 연락이 되는 병동일수록, 더 많은 실수가 보고됐다.


팀원들이 업무를 잘 숙지하고, 활기가 넘치고, 서로 협력하는 병동일수록, 그래서 환자들이 불평과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병동일수록 실수가 더 많이 보고 됐다. 도대체 왜 이런 상식 밖의 결과가 나온 것일까? 연구팀이 조사한 2개 병동에 대한 묘사를 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Memorial 1의 관리 간호사는 팀원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며 영감을 불어넣는 리더라는 평판이 높다. 그는 ‘일정 수준의 실수는 일어나기 마련’이라며 “(실수를 이유로) 벌을 주지 않는 환경은 실수를 생산적으로 다루는 데 본질적으로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한 간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벌이 없어요. (실수를) 의사들에게 알리고 보고서에 기록하기만 하면 돼요.” 다른 한 간호사의 증언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서는 실수를 기꺼이 인정해요. 왜냐하면 (관리 간호사가)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죠.“


이곳 병동에서는 실수를 배움의 기회로 여겼다. 실수를 통해 기존에 미처 몰랐던 것을 새롭게 배우게 된다. 그래서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된다.


Memorial 3 병동의 문화는 Memorial 1과는 확연히 달랐다. 간호사들이 실수를 두려워했다. “이곳에서 실수한다는 건 곤란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만약 당신이 실수를 하면, 의사들이 당신 목을 깨물어 버릴 거예요.”


예를 들어, 환자 채혈 시 실수를 저지른 한 간호사는 마치 재판정에 선 피고인처럼 관리 간호사에게 질책을 당했다. 그렇기에 이곳 병동에서는 실수가 발생하면 남탓을 해야 했다. 그래야 질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두 병동은 관리 간호사가 다른 간호사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랐다. 메모리얼 1의 관리 간호사는 직원들을 자율적이고 책임 있는 존재로 봤다. “직원들은 스스로에게 엄격합니다. 유능하고 숙련되어 있습니다.”


반면 메모리얼 3의 관리 간호사는 다른 간호사들을 규율(discipline)이 필요한 어린아이 다루듯이 했다. 또 보고서의 구성과 양식에 더 많은 신경을 썼다. 그렇다면 두 병동 중 어디에서 실수가 더 많이 보고됐을까? 메모리얼 1이었다. 에러 발생률이 23.68로 메모리얼 3의 2.34에 비해 무려 10배나 높았다.


그 이유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병동은 실수를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데다가, 배움의 기회로 여기기 때문이었다. 간호사들은 그럴 역량을 가진 존재로 인정받았다. 그렇기에 거리낌없이 실수를 보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 메모리얼 3에서는 대부분의 실수가 숨겨졌다. 어쩔 수 없이 꼭 알려야 하는 실수만 수면 위로 드러났다. 실수는 곧 징벌을 의미하는 곳에서 실수를 온전히 보고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때문에 앞서 밝혔듯이 리더십이 뛰어나고, 팀 간 협업이 잘 되고, 활기차고, 고객 만족도가 높은 병동일수록 더 많은 실수가 보고되는 것이다.


웬만한 직장은 메모리얼 3와 비슷할 것이다. 직원들은 잘못하고 실수하면 질책을 받을까 겁을 낸다. 그래서 실수를 숨기려 한다. 그러다 보니, 조직에서 100개의 실수가 발생해도 CEO는 1~2개도 제대로 알기 어렵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는 줄 착각한다. 그렇기에 실수에 폐쇄적인 조직일수록, 고위층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바보가 되기 마련이다.


당신이 리더라면, 가슴에 손을 얹고 다음 질문에 답해보라. “당신의 직원들은 실수를 저지르거나 잘못을 인정했을 때, 질책이나 보복을 당하지 않는다고 얼마나 확신하고 있습니까?”


만약 “확신하고 있다”라는 답을 자신있게 할 수 없다면, 당신은 잠재적인 바보 보스다. 만약 “전혀 확신하지 못한다”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면, 당신은 바보 보스가 거의 확실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전혀 못한다”라고 답한 걸 보면, 자신의 조직이 어떤 처지인지 인식은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칠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고성과 팀일수록 실수가 더 많이 보고된다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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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1일 오전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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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실수가 배움의 기회로 작용한다면 이런상황이 나쁘지않지만 이걸 악이용하는 즉 실수해도 우린 괸찮아 누군가 해결해줄꺼야 라는 당연한실수로 인정되는 분위기가 만들어 질수가있죠. 양날의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