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게임

buildspace라는 샌프란의 메이커 커뮤니티가 하나 있다. 음악부터 소프트웨어까지 무언가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다 같이 참여해서 몇 주간 미션을 하고 런칭하는 그런 커뮤니티다. 원래는 웹3 교육 스타트업이었지만 중간에 피벗했고 buildspace에는 5년 동안 몇 만 명이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큰 메이커 커뮤니티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근데 그런 buildspace를 closing 한다는 letter가 왔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buildspace를 응원했다.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얘기하고 만들고 공유하게 만들고, 디스콰이엇에서 계속 강조하는 커뮤니티의 가치를 매우 잘 만들어내는 곳이어서 참고도 많이 했고 영감도 많이 받았다.


farza가 closing letter에 쓴 내용은 buildspace를 오랫동안 해오면서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예전만큼 재밌지 않다고 했고, 그 모습이 번아웃이 온 것처럼 느껴졌다. 자금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투자자의 압박도 아니고 매출이 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farza는 오히려 그런 이유였다면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이 letter를 읽으면서 나 자신과 디스콰이엇 팀, 그리고 지금까지 만났던 무수히 많은 메이커들이 곧바로 떠올랐다.


회사가 망한다면 그건 회사가 돈을 못 벌어서, 지표가 안 나와서가 아니라 더 이상 할 에너지가 없어서 포기하는 것이다.


학업이나 커리어가 잘 풀리지 않는다면 그건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해서, 인맥을 잘 못 쌓아서가 아니라 그 분야에 열정이나 호기심이 떨어진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에 도전하고, 부딪히고, 다시 일어나게 만드는 가장 귀중한 원동력은 돈이나 시간도 아니다. 열정과 호기심, 그걸 끈기 있게 지속할 에너지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라 무언가 실행하면 바로 결과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처음엔 한 1년 정도 빡세게 하면 꽤 대단한 성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스타트업이 그렇듯이 성장이라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고, 그 과정에서 실패도 겪고 많이 배웠다. 다행히 현솔이 Pre-A 투자를 받아내고 더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1]


그래서, 그래도 내년엔 PMF 찾지 않을까? 미국에 진출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고 이를 위해 더 다양한 시도들을 했다. 하지만 중간에 겪은 팀에 대한 문제들, 개인적인 어려움들, 성장을 만들기 위해 마루에서 먹고 자고 집에는 주 2일만 들어가면서 쉬지 않고 노력한지도 2년 반 정도 됐다. 하지만 여전히 답을 찾아가고 있다.[2] farza가 5년 동안 web3 educations startup + buildspace 한 것에 비하면 고작 절반이긴 하다. 그렇지만 2년 반은 어쨌든 꽤 긴 시간이고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이 배웠다.


내가 배운 것은, 일단 포기만 하지 않으면.. 힘들어도 끈기 있게 지속하면 언젠가 공감해 주고, 응원해 주고, 진심 어린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들 중 일부는 팀원이 되기도 하고, 디스콰이엇의 성장이 주춤할 때 도와주어 서로에게 귀인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본래 갖고 있는 호기심들(영감을 주는 것을 만드는 위인들, 국가와 기업들의 역사, 훌륭한 제품 등)을 자극하는 새로운 가설과 진실들을 계속해서 발견해나가면서 디스콰이엇을 만들기 위한 에너지를 잃지 않고 있다.


제목이 지지 않는 게임인 이유는, 설령 디스콰이엇이 결국 PMF를 못 찾고 몇 년 뒤에 망한다고 해도, 나는 이미 많은 것들을 배웠고 경험했고, 좋은 사람들을 너무 많이 알게 되었다. 이게 내 자산이고, 내 열정과 호기심 그리고 에너지는 살아남아서 next step에 멋진 걸 계속할 수 있을 거다.


2022년부터 알던 많은 메이커, 유저분들, 디스콰이엇을 거쳐 간 팀원들이 문득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그중엔 학업에 돌아간 분도, 가정에 집중하는 분도, 만들던 제품이나 창업을 관두고 쉬는 분도, 회사에 들어가 열심히 달리는 분도 있다. 모두가 지지 않는 게임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디스콰이엇이 그런 게임을 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1] 현솔이 쓴 디콰 pre-a 투자 유치 회고글 1~3. 멘탈 관리. 시점 선정에 대한 글.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은 분들, 창업을 하고 투자 유치를 고려하는 분들이라면 꼭 읽었으면 좋겠다.

https://dis.qa/fffn
https://dis.qa/ktc9h
https://dis.qa/nnq49cb
https://dis.qa/s506
https://dis.qa/f6dzyo


[2] 디스콰이엇에 합류하고 쓴 개인 회고들.

https://dis.qa/fnjsawdn
https://dis.qa/JRRij3
https://dis.qa/89j28Pi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또는

이미 회원이신가요?

2024년 8월 27일 오전 1:48

조회 1,016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