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바빠 죽겠는데, 남을 도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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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정말 며칠 안 남았다. 중요한 일이나 새출발 등을 앞두고 있을 때는 흔히들 ‘선행’을 통해 ‘덕’을 쌓아보겠다는 듯한 행위를 무의식적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부나 봉사활동 등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해보는 건 어떨까? 기부나 봉사활동은 우리의 ‘행복’과 ‘자존감’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심리학자 애크닌(Aknin)과 동료들의 연구에 의하면 ‘타인’을 위해 돈을 쓰면 기분이 좋아질 뿐 아니라, 심지어 ‘자기 자신’을 위해 돈을 쓸 때보다 기분이 좋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류의 속설과 달리, 이런 현상은 돈 많은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비교적 가난한 나라인 우간다와 부유한 축에 속하는 캐나다 각각에서 사람들에게 ‘최근 돈을 쓴 경험’에 대해 자세히 떠올려보게 했다.
그 결과 두 나라 모두에서 ‘내가 필요해서 내 옷을 샀음’같이 자신을 위해 돈을 쓴 경험보다, 기부를 했거나 친구를 위한 선물을 사는 등 다른 이를 위해 돈을 쓴 경험을 떠올린 사람들이 더 행복감을 느낀 현상이 나타났다.
똑같이 가방을 사도록 했을 때, 우간다와 캐나다 모두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살 때보다 병원에 있는 아픈 아이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샀을 때 사람들은 더 높은 행복감을 느끼는 현상이 보고되기도 했다.
136개국 20만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에서는 경제적 수준, 나이, 성별, 교육 수준 등과 상관 없이 평소 좋은 일에 돈을 기부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행복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 결과는 가난한 나라이던 부유한 나라이던, 정치.경제적으로 부패한 나라이던 깨끗한 나라이던 상관 없이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었다.
한국에서도 가난하든 부유하든, 나이가 많든 적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교육수준이 높든 낮든 기부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남을 도움으로써 얻는 보상(뿌듯함, 기쁨 등)은 본성에 뿌리 깊게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해석했다. 즉 남을 돕는 일은 사회적 동물인 우리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행복을 높여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남을 도움으로서 ‘자존감’이 향상되기도 한다. 일례로 ‘봉사활동’을 통해 행복과 건강, 자존감이 향상된다는 연구들이 다수 있는데, 그 비결은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만남으로서 ‘외로움’이 줄어든다는 것, 의미있는 활동을 함으로써 생기는 삶의 의미감과 목적의식,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 등이었다.
행복과 자존감만이 아니다. 좀 의외일지도 모르지만 남을 도움으로써 심적 ‘여유’를 얻게 되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빨리빨리’ ‘바빠 죽겠어’ 등으로 대표되는 ‘시간 기근(time famine)’에 빠져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리적으로도 바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마음이 바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한 가지 재미있는 발견이 ‘효율성’이다. 예컨대 지금보다 효율이 더 좋아지면 마음의 여유가 생길까? 지금보다 밥을 더 빨리 만들 수 있게 되면 지금보다 줄을 서는 시간이 줄어들고, 지금보다 모든 프로세스가 더 빨라지면 우리는 여유 시간이 늘어나게 되고, 그 결과 심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게 될까?
논리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의 현상들이 상당히 관찰된다. 예컨대 효율성이 좋아질수록 사람들은 그만큼 ‘참을성이 없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쉬기보다 더 많은 일을 만들어낸다.
시(Hsee) 등의 연구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일과를 마무리하는 기준이 보통 ‘신체의 피로’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편해지는만큼 더 많은 일을 하면 했지, 남은 시간과 체력의 여유를 즐기거나 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효율에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 한가지 예로 시간을 아끼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퍼줄 때 쓸 수 있는 시간의 절대량은 줄일지 몰라도 마음의 여유는 늘어난다는 연구가 있었다.
펜실베니아 대학 심리학자 모길너(Mogilner)와 동료들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사람들에게 아픈 아이를 위해 편지를 쓰거나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돕는 등 일정 시간을 남을 위해 보내도록 했다. 또는 물건을 들어주거나 길을 가르쳐 주거나 친구의 고민상담을 해주는 등 ‘오늘 하루 중 아무 때나 10분 정도는 남을 위해서 쓰세요’라는 지시를 했다.
그리고 대조군의 사람들에게는 같은 시간을 자신을 위해서 쓰거나 문장에서 알파벳 e와 s가 몇 개인지 세는 등의 별 의미 없는 일을 하며 소요하게 했다. 또는 자유시간을 줬다.
그런 다음 사람들에게 ‘나는 내 삶에 주어진 시간이 촉박하다고 느낀다’, ‘시간은 한정된 자원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등의 문장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물었다.
그 결과 재미있게도 여가 시간을 갖거나 별 일 안 하고 시간을 써버린 사람, 무얼 하든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쓴 사람들보다, 남을 위해서 시간을 쓴 사람들이 가장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다고 지각하며 마음의 여유를 갖는 모습을 보였다.
24시간으로 한정된 시간이 자신을 위해 쓸 때보다 남을 위해 쓸 때 더 넉넉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시달리고 있는 만성적인 ‘시간 기근(time famine)’에 대한 한 해법은 남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효율을 과감히 버리고 정면으로 역행할수록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많은 기부자나 봉사자들이 ‘주려 했다가 더 많이 얻었다’는 말을 한다. 여기에는 아마 자존감, 행복, 마음의 여유 등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주려 했다가 더 많이 얻는 연말을 체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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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5일 오전 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