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에 끊임없이 의문을 품지 않았더라면 지금 같은 셰프가 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물려받은 한국의 유산 가운데 지금까지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입니다.‘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이 책을 썼습니다. 그들의 음식이 수천 킬로미터를 건너와 미국의 모든 가정으로 흘러든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요리계의 아카데미상 ‘제임스 비어드’ 상을 받은 음식 에세이 <버터밀크 그래피티>는 비빔인간 이 균의 인생 레시피 같은 책이다. 동공에 미뢰를 장착한 듯 그는 세상 모든 풍경을 음식과 맛으로 시각화한다.


전직 권투 선수였던 아일랜드 바텐더의 위스키, 생선 내장을 베이스로 한 캄보디아 요리사의 만찬, 젖은 숲 맛이 난다는 위구르 식당의 국수, 500년 동안 꿇고 있는 페루의 냄비 요리도 흥미롭지만, 에드워드 개인의 사랑과 이별의 장면에 나오는 사소한 음식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1️⃣음식에 관한 당신의 포용성을 생각하면, 서바이버 프로그램 출연은 사실 다소 의외다. 게다가 아메리칸 아이언 셰프 우승자가 <흑백요리사>엔 왜?


🅰️처음에 넷플릭스는 내게 심사위원을 제안했다. ‘한국말 할 수 있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거짓말을 했다(웃음). 나중에 줌 미팅을 해 보곤 놀라더라. ‘한국말 못하시네요!(웃음)’.


몇 주 뒤 ‘참가자로 와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안 될 거 없었다. 평소에도 호시탐탐 한국 식재료를 쓸 기회를 찾았고, 죽기 전에 한국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싶었으니까.


문화의 연결 지점이 된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다만 한가지 결심을 했다. 이 경연에서 프랑스 미슐랭 요리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오직 한국 식재료로 새로운 요리를 하겠다고.


2️⃣<흑백요리사>의 주요 장면을 다시 봤다. 모든 말이 시처럼 아름다웠다. 특히 결승전에서 읽은 편지와 떡볶이 세미프레도가 더욱 애틋하게 다가왔다.


🅰️사실 쇼에 참가하러 한국에 왔을 때 몹시 외로웠다. 호텔 방에서 혼자 지내면서 계속 물었다. ‘내가 여기 왜 있는 거지?’ ‘나는 뭘 하고 싶은 거지?’ ‘우승하고 싶은가?’


1~2단계 이상은 못 올라갈 줄 알았는데. 쇼가 진행될수록 살아남았고 덕분에 미국을 오가느라 힘들었다. 힘든 와중에도 흥미를 잃지 않은 건 이 쇼의 컨셉 때문이었다.


결승에 오르면 흙수저 요리사들이 자신의 이름을 공개할 수 있다는! 이름은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내 이름은 OOO입니다. 나는 누구입니다’…”


3️⃣파이널 라운드에서 백요리사인 당신이 다른 이름을 공개하면서 <흑백요리사>에 의도치 않은 레이어가 생겼다. ‘내 한국 이름은 ‘이 균’입니다’...흑백의 대비를 뒤집는 이런 반전이!


🅰️쇼가 절반 정도 진행됐을 때 다짐했다. 결선에 가면 한국 이름을 공개하자. 사실 한국 이름을 비밀로 해왔다. 아무도 모르는 이름을 갖고 자란다는 건 정말 이상한 경험이다. 인생 중반에 한국 이름을 공개하고, 그걸 쓸 기회를 얻고 싶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요리보다 한국말을 해야 한다는 게 더 걱정이었다. 한국어로 글을 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너무 긴장해서 다 외우지 못해, 양해를 구하고 현장에서 읽었다.


개인적인 감정을 담은 편지였는데, 쇼가 끝나고 정말 많은 재미교포가 연락을 해왔다. 자기들 마음을 대변해 줘서 고맙다고. 우승은 못 했지만, 뭔가를 이뤄냈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4️⃣당신은 불완전함 그 자체를 사랑하면서 열린 요리를 만들었다. 안전하진 않지만 매 순간 흥미롭게. 매번 자신이 잘하는 것보다 해 보지 않았던 모험을 선택하는 편인가?


🅰️그런 것 같다. 뇌의 다양한 부위를 사용하는 걸 즐긴다. 글쓰기, 요리, TV 출연은 각기 다른 재미를 준다. 요리를 한다는 건 시간과 싸우는 일이다. 아침 9시에 요리를 준비하면 오후 5시엔 모든 게 갖춰져야 한다. 손님이 왔는데 음식이 제시간에 나오지 않으면 큰일이다.


반면 글을 쓸 때는 시계를 보지 않는다. 5시간 동안 한 챕터를 쓸 때도 있고 한 문장을 쓸 때도 있다. 10장을 쓰고 다음 날 다 버릴 수도 있다. TV쇼는 또 다른 다이내믹이다. 나의 뇌가 상황에 맞게 다르게 반응하고, 각기 다른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걸 즐긴다.


5️⃣당신은 어느 문화권이든 잘 스며드는 것 같다. 미국에서 고추장과 발효에 심취하는 모습도, 한국에서 햄버거와 콜라 광고에 나오는 모습도 다 잘 어울린다. 레스토랑과 출판, TV쇼…어느 장르에서건 여유 있어 보인다.


🅰️하하. 내 인생, 괜찮다. 하지만 너무 바쁠 때는 아내가 불평한다, 속도를 좀 줄이라고.


6️⃣압박감을 느낀 적은 없나?


🅰️나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다. 아예 없진 않겠지만, 나이가 들어선지 ‘이것 때문에 죽진 않을 거야’ ‘다음날은 괜찮아질 거야’ 이런 태도를 갖게 되었다. 나는 다양한 흥밋거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당장 결과가 안 좋아도 그냥 다음 것으로 넘어간다. 집착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뭔가를 엄청나게 잘했다고 해도 거기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가족들과 조금 보긴 했지만, 나는 <흑백요리사>도 다시 보지 않았다. 과거를 분석하기보다 그냥 계속 다음 것을 하는 게 내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7️⃣그렇다면 당신이 두려워하는 건 뭔가?


🅰️지루함. 지루함이 가장 두렵다.


8️⃣누군가에게 판단 받는다는 두려움은 없나?


🅰️늘 판단받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판단받는 데는 단련이 되어 있다. 누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 안 한다. 내가 운영하는 식당에 관한 좋은 기사도 읽지 않는다. 긍정적인 비평을 읽고 좋아하면 부정적인 평가도 받아들여야 하니까. 그런 판단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판단의 기준은 내가 정한다.


9️⃣당신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미국의 오래된 표현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이 만약 사랑하는 무언가를 한다면 당신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가령 사진 촬영을 하는 건 일이다, 좋아하지 않으니까(웃음). 그 외에 모든 것은 내게 일이 아니다.


🔟일이 아니면 사랑인가?


🅰️사랑 그 이상의 무언가가 나의 뇌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런 상태가 좋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에드워드 리가 사는 법 “나는 압박감 없이 일한다”

조선비즈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에드워드 리가 사는 법 “나는 압박감 없이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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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5일 오전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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