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만난 사람은 늘 어색하다. 뭔가 말을 건네야 한다. 인사 없이 지나가긴 애매하다. 하지만 대화 주제는 많지 않다. 날씨, 뉴스 얘기 몇 마디는 어떻게 해본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건 마무리다.
2. 이때 가장 좋은 건 '밥 한번 먹자'다. 언제 시간 될 때 우리 밥 한 번 먹어요. 실제로 준 건 없지만, 내 시간을 내주는 기분이다. 받는 사람도 그러려니 하며 넘어간다. 암묵적으로 합의된 하얀 거짓말이다. 어색하지 않게 헤어질 수 있으니까.
3. 우리는 다 안다. 언제 밥 한번 먹자의 그 '언제'는 절대 오지 않는다는걸. 그 빈말이 정말 이뤄지려면 그다음 질문이 꼭 나와야 한다. 언제쯤이 좋으세요? 어디서 뵐까요? 하지만, 매우 드물다.
4. 일도 마찬가지다. 기한과 담당자가 정해지지 않은 일은 그저 빈말이다. '무엇'을 위해 '누가' '언제'까지 어떤 결과를 만들 것인가. 하나라도 빠지면 일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5. 정말 꼭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면? 언제 밥 한번 먹자 하고 지나칠까. 절대 그럴 리 없다. 어떻게든 시간을 요청해서 일정을 잡을 것이다. 그 만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우선순위가 높은 것이다.
6. 일도 마찬가지다. 잘 진행이 안되는 일이 있다. 계속 미뤄지고, 진도도 안 나간다. 이유가 있다. 너무 바빠서 그 일을 할 시간이 없다. 이 말은 거짓말이다. 사실 그 일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7. 그 일에 쓸 시간이 없는 건, 그 시간을 다른 일에 쓰기 때문이다. 중요하다면 자연스럽게 우선순위가 올라간다. 시간을 만든다. 시간을 낼 수 없는 건 그 일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일을 위한 시간은 영영 오지 않는다. 아니면 우선순위의 고민이 없었다거나.
8.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는 의미 없는 '언제'를 던질 수 있다. 하지만 일은 그럴 수 없다. '언제'까지 하거나, 아니면 아예 하지를 말아야 한다. '시간이 없어 못한다'와 '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완전히 다르다. '하지 않겠다'는 의식적인 결정이다.
9. 무엇을 할 건가 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건가의 결정이 훨씬 중요한 세상이다. 할 일도 많다. 우리의 관심을 빼앗는 것도 많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과 리소스는 정해져 있다. 언젠간 하겠다는 일의 '언제'는 결코 오지 않는다. 언제 밥 한번 먹자처럼.
#바쁘다는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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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2일 오전 1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