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일기예보를 보지 않고 하늘을 믿은 채, 우산을 챙기지 않고 집을 나섰습니다. 오전과 오후 내내 비가 오지 않았고, 설령 내리더라도 많지 않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퇴근 무렵, 회사 동료가 "비 맞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하고 물었을 때, 저는 시애틀과 밴쿠버에서 살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거긴 비가 자주 와서 우산을 잘 안 써요"라며 거들먹댔습니다.
하지만 오후 6시가 넘자 제법 굵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산을 빌릴 수도, 살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냥 맞기로 했습니다. 수많은 우산의 물결을 뚫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던 중, 신호등 아래 나무 그늘에서 잠시 비를 피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젊은 커플이 다가와 우산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저희는 우산이 두 개인데, 하나로도 충분해서요. 이거 쓰세요."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뇌가 정지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떨결에 우산을 받아 들고, 짧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누군가가, 자신이 쓰던 우산을 건넨다는 건 참 낯설고도 감동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누군가가 거리에서 비를 맞는 저에게 우산을 씌워준 적은 없었기에, 그 순간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를 만난 듯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봉사와 나눔에 대한 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무언가 대단한 준비나 형식을 갖추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손에 들린 우산 하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나눔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 누군가를 돕기 위해 꼭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거창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저는 틀렸습니다.
물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를 돕는 건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꼭 준비가 되어야만 도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곁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손 내밀 수 있는 용기만으로도 봉사와 나눔은 시작됩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길을 우산 하나 들고 돌아오는 길, 그 커플의 작은 행동이 제 하루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내일은 저도 우산을 두 개 들고 나가려 합니다. 하나는 제가 쓰고, 다른 하나는 오늘의 저처럼 비에 젖고 있을 누군가에게 영구히 빌려줄 생각입니다. 이 정도의 노력으로 누군가에게 따뜻한 기억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선행이 아닐까요?
우리는 종종 "더 많이 가지면 베풀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가진 것이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면 나누지 못합니다. 자족하는 마음, 지금 손에 쥔 것에 만족하는 마음이 있어야 베풀 수 있습니다. 아마 어제 우산을 건넨 그 커플도 자신들이 가진 것에 만족했기에 주변을 돌아보고 저에게 손을 내밀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지금 여러분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한번 돌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하다고 느껴도,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봉사와 나눔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손에 들린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며, 의미 있게 나눌 줄 아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마주쳤을 때, 머뭇거림 없이 손을 내밀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용기를 갖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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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16일 오후 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