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잘 지우는 방법




지난 5일 동안 필리핀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쉴 새 없이 움직였습니다. 봉사 준비부터 사역지 이동, 현지 주민들과의 만남까지 모든 순간이 바빴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땀 흘리며 농구를 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정리와 다음날 준비로 하루가 마무리됐습니다. 일상을 완전히 잊고 오직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았던 완벽한 일탈의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낡은 건물을 보수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페인트칠과 시설 보수가 주된 일이었는데, 이때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페인트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한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집에서 직접 페인트칠을 할 일도 없었고, 미술과도 친하지 않았던 터라 무관심했던 영역이었습니다.

나무용, 철재용, 석재용으로 용도가 나뉘고, 수성과 유성으로 성분도 달랐습니다. 작은 붓으로 세밀하게 칠하기도 하고, 긴 막대에 달린 롤러로 넓은 면적을 칠하기도 했습니다.

붓에 페인트를 묻혀 바르기만 하면 되는 단순해 보이는 작업이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붓으로 문지르고 또 문질러도 고르게 칠해지지 않았습니다. 표면의 질감에 따라 잘 발라지는 곳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발라도 페인트가 잘 묻지 않는 곳도 있었습니다. 덕지덕지 칠하고 나면 과연 이전보다 나아졌는지 헷갈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안 한 것보다는 낫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페인트칠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높은 곳을 칠할 때였습니다. 붓에서 페인트가 떨어져 사람에게 튀는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건강에 해로운 것도 문제지만, 옷에 묻은 페인트를 바라봐야 하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더 컸습니다. 저 역시 모자와 티셔츠, 바지에 페인트가 묻었습니다. 하지만 작업을 무사히 마쳤다는 성취감에 옷에 묻은 페인트가 영광의 흔적처럼 느껴졌습니다.


함께 작업했던 한 젊은이가 페인트 작업에 경험이 많은 시니어에게 물었습니다.

"물에 지워지지 않는 페인트는 무엇으로 지울 수 있나요?"

그러자 시니어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지워질 거야."

우문현답이었습니다. 머리가 띵했습니다. 억지로 지우려 애쓰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지우고 싶은 것들이 저절로 사라진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잘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흔적들, 마음의 상처들, 쓰라린 기억들 모두 시간이 지워줄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누구나 아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필리핀에서 만난 현지 청년들도 다양한 고민과 걱정을 안고 있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복잡한 가정 상황, 미래에 대한 불안 등 크고 작은 문제들이 그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이는 한국의 청년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이 하나쯤은 겪고 있는 보편적인 어려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 마치 평생 지속될 것처럼 느껴집니다. 영원히 해결되지 않고 끈질기게 괴롭히는 문제들도 있습니다. 어떤 상처는 계속 떠올라 마음과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은 언젠가 끝이 나고 사라집니다. 마치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 같던 페인트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빨래를 돌리고, 비에 젖고, 이리저리 마찰되다 보면 아무리 강력한 페인트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모든 세상 이치가 그런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프고 슬픈 기억과 마음도 언젠가 사라지고 맙니다. 그때까지 필요한 것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의지입니다. 지금 힘들다고 삶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됩니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포기하고 내려놓으면 안 됩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도전을 통해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잘 풀리지 않는 현실의 문제도 시간이 해결해줄 것입니다. 반드시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때로는 더 어려운 문제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때는 또다시 필요한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문제도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런 내공이 쌓이는 순간까지 시간을 견디고 흘려보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문제는 힘들고 어렵습니다. 먼저 그 문제를 해결해본 사람에게 물어보고, 도움과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도움을 기다리기보다 적극적으로 구하는 것이 진정한 힘과 용기입니다.

각자가 오늘 겪고 있는 문제를 지혜롭게 극복해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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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13일 오후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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