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되지 않는 DA 조직이 되려면?

DA 조직의 역할이 현상 해석에 머물러 있다면, 높은 확률로 다른 조직의 역할로 대체될 수 있다. 영업/마케팅/기획/전략 등 비즈니스 조직은 이미 도메인 경험이 풍부한 만큼 더 빠르게 결정할 수 있다. 굳이 ‘느린’ 데이터 분석을 기다려야 한다면, 오히려 속도에 민감한 이들 조직의 저항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DA 조직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비즈니스에 기여할 기회들을 놓치면서, ‘DA는 중요하지만 DA 조직은 중요하지 않은’ 기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여기까지 오게 되면 DA 조직의 역할은 보통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1. ‘빠르게’ 분석 요청을 처리한다


‘빠른’ 분석 역량을 확보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한 일이지만, 빠르게 분석 결과를 쳐내는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곧 ‘생산적’이라 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주어진 역할은 생산적으로 해낼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곧 비즈니스 효율을 높이는 생산성인가 하는 관점은 DA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빠르게 분석하더라도 DA 없이 내리는 결정보다 빠를 수는 없다. 게다가 ‘그 결정이 데이터 기반이었는가’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은 대부분 소모적이다. 실제로는 데이터 없이도 빠르고 잘 결정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DA 조직이 따로 구성되어 있을 정도의 기업이라면, 이미 DA 없이도 돈 잘 벌고 있을 텐데 무슨 걱정인가.


2. ‘어려운 문제’만 골라 요청받는다


협업 부서에서도 의사결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제 DA 조직을 찾을 명분이 생긴다. 이런 문제야말로 데이터 조직이 일 좀 해야지, 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첫째, 현업에서 어려운 문제는 DA 조직에게도 어렵다. 아니, 오히려 더 어렵다. 현업에서도 풀기 힘든 비즈니스 문제에 대한 가설을 DA가 더 잘 세울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그 가설을 데이터로 뒷받침해야 하니, 이게 쉽겠나. 아무리 현업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도 뾰족한 결론을 내기란 어렵고, 결국 현업의 입맛에 맞는 데이터들이 취사선택되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과연 DA 조직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기업 환경이 어려워지면 우선적으로 축소 또는 해체 대상이 될 뿐이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DA 직군이 계속 성취감을 갖고 일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빠르고 의미 있는 분석 결과를 내고, 현업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어려운 문제를 다루는 슈퍼 분석가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개별 분석가가 아니라 DA 조직 자체가 그렇게 수행해낼 확률은 거의 없다(분석가의 역량은 천차만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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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일 시키기 전에 먼저 나서서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의사결정 과정에 들어선 뒤에야 데이터 분석이 개입되는 게 아니라, 그 이전 단계에서 필요한 데이터와 분석 결과를 미리 공급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대시보드를 활용하더라도 현업 요청에 따라 구축하는 것과 선제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외부 업체를 통해서도 개발·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이지만, 후자는 단순히 기술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전략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고 논의를 촉발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 데이터 활용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기업이라면, 그 효율과 정확도를 높이는 활동도 의미가 있다. 예컨대 온라인 실험 기법의 신뢰성을 높이거나, 비즈니스적으로 의미 있는 지표를 찾아내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이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런 활동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영진으로부터는 지원은커녕 성과 인정도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과감히 이직하자..).


정리해보자면,

  • 필요한 데이터와 분석 결과를 선제적으로 공급하고,

  • 비즈니스 전략 논의의 출발점을 마련하며,

  • 이러한 활동들의 신뢰성과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나가는 것.


나는 이것이 DA 조직이 대체 불가능하고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현재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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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직군과 교류하다 보면 회사에서 여기저기 치이며 시달리다가, 최근에는 AI가 DA를 대체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더해져 회의감을 갖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나 모든 직군과 업종이 그렇듯, 내 일이 대체되지 않으려면(다른 직군에 의해서든, 혹은 AI에 의해서든)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입증해내야 한다. 위에 정리한 내용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고민과 노력을 해나가는 과정이야말로 누군가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 영역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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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2일 오전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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