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Q한국판 초대 편집장 이충걸, 시력의 절반은 잃어도 '책 쓰는 베토벤'의 삶은 계속된다
Khan
“내가 ‘GQ’를 만들 당시, 혹은 초창기에는 가로수길과 청담동에 바지의 밑위길이까지 잘 고안해서 옷을 입는 젊은 남자들이 있었다. 이제는 그들은 멸종됐다. 너무 이상한 일이지? 내가 기여한 것이 있다면, 외양에 대한 숙고를 하게한 점. 또 하나는 유파가 없는 텍스트를 독자들에게 읽게 하는 경험을 준 것,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GQ>의 문체, 텍스트의 함량이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아니었을까. 나에게는 에디터들이 글을 잘 쓰는 게 너무 중요했다. 교정 볼 때는 쉼표의 자간까지 체크했다.”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에도 썼지만 나에게 GQ는 '멋 선생님'이었다. 고등학생 때 이 잡지의 창간호를 구입한 이후로 드리스 반 노튼과 톰 포드를 알게 됐다. 클래식 슈트를 멋스럽게 입는 법을 배웠다. 한국적인 미를, 유르겐 텔러와 테리 리처드슨의 사진을, 긴자의 오래된 가게를, 장우철이라는 희대의 에디터를 접했다. 이게 다 이충걸 편집장 덕분이었다. 그는 이 잡지의 창조주이자 지휘자였다. 그가 만든 이 '작품'은 당시 세계 18개국에서 발간되던 다른 ‘GQ’들을 초라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 덕분에 (나를 포함한) 많은 한국 남자들이 '멋'에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이고. '멋 선생님'이 되어준 이 잡지에, 그리고 이충걸 편집장에게 아직까지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트레바리 클럽장데이에서 만나면 이 마음을 전하려고 헀는데, 아직까지 기회가 없었다.
2020년 2월 9일 오후 1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