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여름, 당시 26세였던 피카소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같은 해 가을, 세잔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고 수많은 찬사가 쏟아졌다. 안타깝게도 세잔은 살아 생전에는 이런 큰 사랑을 받지 못했다.
피카소는 20세가 되기 전에 전시회를 열고 유명해졌는데, 세잔은 50대 중반에서야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초기부터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지닌 개척가냐, 가면 갈수록 다듬어지는 개선가냐에 따라 갈리는 것이다.
피카소가 개척가, 세잔이 개선가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이 일하는 방식은 판이하다. 개척가는 처음부터 명확한 생각을 갖고 작품을 만든다. 예술의 소재는 단지 그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반면 개선가는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생각을 수정한다. 그러므로 현실의 소재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개척가는 현실을 초월하지만, 개선가는 현재에 기반한다.
이런 특징으로 개척가는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이 형성되기 전인 젊은 시절에 획기적인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피카소의 작품 중 미술 교과서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은 초기작이다.
반면 개선가는 다양한 경험과 수많은 작업으로 예술에 대한 혜안이 최고조에 이른 늙은 시기에 대작을 만들어낸다. 세잔은 말년에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고, 교과서에 실린 작품도 대부분 50대 이후의 것이다.
기업에도 급진적 혁신으로 소비자를 놀라게 만드는 개척가 기업과 점진적 혁신으로 소비자를 편리하게 해주는 개선가 기업이 있다. 피카소와 세잔이 다르듯이 개척가 기업과 개선가 기업은 여러 면에서 상이하다.
1️⃣ 일의 중심이 다르다.
개척가는 강점이나 핵심역량에 기반해 일을 한다. 반면, 개선가는 시장 중심으로 일을 한다. 시장 기회가 생기면 역량에 관계없이 뛰어든다. 그래서 개선가가 소비자의 목소리를 중시하는 데 반해 개척가는 소비자 의견을 무시하기도 한다.
2️⃣ 의사결정 방식이 대조적이다.
개척가는 직관적으로, 개선가는 논리적으로 의사결정한다. 개척가는 보고서 보다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의견을 좁혀나간다. 반면 개선가는 다양한 데이터와 팩트에 근거해 의사결정을 한다. 개척가가 디자인과 같은 감성 품질에 강점이 있고 개선가가 기능 구현에 능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3️⃣ 일의 가치를 다른 데 둔다.
개척가는 새로움이나 남다름을, 개선가는 속도나 완벽함을 추구한다. 개척가는 다른 기업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고, 개선가는 빠른 기업이란 소리를 좋아한다. 개척가는 가치 창출에 능하고, 개선가는 비용 절감에 탁월하다.
요즘은 환경 변화의 심화로 불확실성에 강한 개척가가 큰 조명을 받고 있다.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는데 능하므로 유망 산업이나 신사업은 항상 개척 기업이 주도한다.
그러나 개척가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확신 있는 핵심역량을 기반으로 일한다는 것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들기 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만든다는 뜻이다. 성공하면 크게 성공하지만 실패도 많다.
개척가는 경쟁에도 취약하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가치를 두는 개척가는 기존의 것을 개선하는 데는 열정을 느끼지 못한다. 시장이 안정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개선가를 당하지 못한다.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애플 마저 개선가로 변모 중인 모양새다. 과거에는 오랫동안 준비한 획기적인 제품 하나에 집중했지만, 이제는 비슷한 제품을 여러 개 출시한다. 아이패드 기본-프로-에어-미니 등으로 변주하는 식이다.
두 가지 방식 중 어느 하나를 택하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개선이 결국에는 개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개선가 기업이 개척가의 방식을 빌려올 수도 있다. 스피드, 시장을 읽고 보는 안목, 그간 축적한 기술 등에 개척가의 용기를 더한다면 ‘빠르면서도 다른’ 기업이 될 수 있다.
개척가 피카소는 개선가 세잔에게 영향을 받았다. 세잔은 오랜 기간 인상파를 연구했고, 결국에는 인상파를 넘어섰다. 인상파의 빛과 색채를 넘어 기하학적 형태를 그림의 근본으로 재정의한 세잔은 입체주의의 탄생에 크게 기여했다.
세잔의 말년 작품인 <목욕하는 사람들>이 피카소의 대표작인 <아비뇽의 처녀들>의 모태가 됐다는 게 미술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피카소의 작품을 촬영하던 사진작가가 세잔에 대해 물었다. 피카소는 이렇게 대답했다. “세잔을 아냐고요? 그는 나의 유일한 스승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