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둘째주에 쓰는 CEO 일지 - 나는 죽어서 무엇을 남기지? 뭔가 생각을 잘 정리해서 써야지, 라고 하면 점점 더 쓰기 어려워지는 것 같아서 그냥 생각이 흘러가지 않게 하는 걸 목적으로 두고 가볍게 기록하기로 한다. 오늘 우리 팀의 리더 분들과 저녁을 먹다가, 이 주제로 길게 이야기를 했다. 뭣인고하니, 지금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 동기가 무엇인가? 라는 것. 도대체 너는 왜????? 이렇게 열심히 해? 마음 깊숙이 깔려있는 심연 속에 뭐가 있나, 에 대해서 각자 이야기를 했다. 이 주제는 참으로 재미있는 게, 각자 어떤 사람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나는 어떤 사람이지? 를 돌아보게 하는데, 일단 나부터 이야기를 해 보자면… 내가 영향을 많이 받은 책 중 하나가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 이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강렬하게 좋아하는 구절은 마지막 에피소드다. 일본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왔을 무렵, 조선처럼 박해를 받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개항이 되면서 드디어 천주교 신부가 다시 일본 땅을 밟는다. 이때까지 몇백 년동안 몇 세대가 이어지면서도, 언젠가는 다시 이 땅에 신앙이 돌아올 것을 믿으면서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 이 이야기를, 김연수는 죽음으로 가는 길임을 뻔히 알면서도 죽음으로 향하던 대학시절 친구들과 연결을 시킨다. 이 책의 마지막 중에서 내 일기장에 옮겨둔 구절은 아래와 같다. “우리 개개인은 충분히 오래 살지 못하지만 우리 인류는 충분히 오래 살테니, 우리 모두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죽겠지만 우리가 간절히 소망했던 일들은 모두 이뤄지리라. 우리가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과 역사라는 무한한 시간을 상상할 수 있다면, 과거의 빛과 미래의 빛이 뒤섞인 밤하늘처럼 과거의 사람들과 미래의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있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다면. 먼 훗날 어딘가 다른 곳이 아니라 지금 즉시 바로 여기에서. 마흔 살이 지난 뒤에도 우리가 미혹돼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불교라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기도 하지만, 김연수 소설가가 말한 위 문장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 개개인은 길어봐야 100년 남짓을 살지만, 인류는 훨씬 오래 살 것이다. 그리고 그 축적된 시간만큼 인류는 더 진보할 것이고 문명은 발전할 것이다. 일시적으로 후퇴하는 시기가 있을지언정,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내가 꿈꾸던 세상을 보지는 못할지언정, 나의 다음, 그 다음 세대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동기부여는 이런 것이다. 그 다음 세대를 위한 중간다리. 기나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중간 다리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고, 기록 속에서 의미가 남는 것.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We’re here to put a dent in the universe. I want to put a ding in the universe. Otherwise, why else even be here? 우리는 우주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우주에 자취를 남기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여기 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2022년 1월 11일 오후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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