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 기간 ESPN의 ‘손흥민의 일시정지’ 기사는 참 좋았습니다. 우리에게 16강을 열어준 골, 그러니까 포르투갈전의 마지막 순간을 세밀하게 들여다봤습니다. 손흥민이 치고 달리는 순간부터 황희찬이 마지막에 슛 하는 순간까지, 그 짧은 시간을 현미경으로 보듯 묘사했는데 그 분석이 신선했습니다. ‘환상적인 골’이란 수식어가 놓치고 있는 그 순간을 살펴본 게 돋보였던 몇 문장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나서 잠깐 멈춥니다. 하나, 둘. 손흥민이 얼마나 오래 공을 잡고 있었는지 셀 수 있습니다. 그리곤 잠깐 시간을 내서 앞에 선 포르투갈 수비수 3명을 쳐다봅니다. 다음 순간 왼쪽에서 페널티지역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황희찬을 봅니다. 잠깐의 정지가 없었다면 그 다음에 뒤따를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습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또 이를 위해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손흥민의) ‘축구 지능’, 또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일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평정심’, 수비수들이 에워쌌을 때 공을 그 사이로 통과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 또 동료에 대한 ‘믿음’. 이런 것들이 좋은 선수와 위대한 선수를 구분하는 일종의 작은 순간입니다.“ 모두가 손흥민의 무서운 ‘질주’에 찬사를 보낼 때, 잠깐의 ‘멈춤’을 주목한 ESPN의 시각이 놀라웠죠. 우리가 볼 수 없는 부분을 볼 수 있게 됐을 때, 축구의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메시 역시 그런 재미를 던져줍니다.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많이 걸어다니는 선수’로 확인받았으니까요. 축구는 많이 뛰고 빨리 달려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메시는 그런 인식을 다시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조별리그 통계에서도 이 통계는 유효했죠. 메시는 레반도프스키와 함께 많이 걷는 선수로 분석됐습니다. 메시는 아르헨티나의 4강전까지 6경기를 뛰면서 53.11km를 누볐고, 그 중 30.61km를 걸어다닌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월드컵 경기에서 절반 이상(57.64%)을 걸어다닌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떻게 축구 선수가 이렇게 많이 걸어다닐 수 있는지 의아하죠. 메시의 ‘걸어다니는 축구’는 영국 BBC에서도 집중조명했습니다. 잉글랜드의 수비수 출신 퍼디낸드는 ‘걷는 축구’를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메시는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갑자기 살아난다”면서 “어느 위치에서도 경기를 풀어낼 수 있는 선수”라고. 과르디올라 맨체스터시티 감독의 과거 발언도 상기시켰죠. 과르디올라는 “메시가 걷는 것은 경기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다. 그는 머리를 계속 움직이면서 수비라인의 오른쪽, 왼쪽을 살피고 그 중에서 약점을 찾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게으른 축구가 아니라 어슬렁거리면서 뭔가 기회를 엿본다는 거죠. 축구에서는 한없이 질주하고 더 빨리 뛰어야만 성공할 것처럼 보이지만, 잠시 멈춰서고 때론 걸으면서도 뭔가 특별한 것을 일궈낼 수 있다는 거죠. 그게 축구의 또다른 면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이요. 이번 월드컵은 축구와 인생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장면]손흥민처럼 잠시 멈춰라, 메시처럼 때론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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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면]손흥민처럼 잠시 멈춰라, 메시처럼 때론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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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7일 오후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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