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지난 1월에 출간한 ⟪브랜드로부터 배웁니다⟫에 포함된 18개의 브랜드 중 하나는 '애플'이었습니다. 브랜딩이나 마케팅 책에서 애플이 다뤄진 횟수는 셀 수 없을 만큼 많겠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애플이 가진 '언어'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한 번 풀어봤었죠. 그래서 애플 챕터의 제목도 '자기 언어를 가진다는 것'이었습니다.
02. 얼마 전 출시한 아이폰 14의 옐로우 컬러 헤드카피는 '나랑 노랑'입니다.
이를 위해 계절감에 맞춘 산뜻한 영상이 전 세계에 공개되었고 늘 그랬듯 애플답게 감각적이고도 유쾌한 장면들을 담아냈죠. 재미있는 포인트는 각 언어권에서 '노란색'을 상징하는 단어 위에 라임을 맞춘 워딩을 붙여 카피를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Hello Yellow가 한국에서는 나랑 노랑이 된 것이죠.
03. 더 이상 광고에 카피가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도 있고, 챗GPT를 비롯한 AI들이 알아서 써줄 텐데 뭘 그리 공을 들이냐라는 의견까지 마케팅 역사 이래 카피를 두고 가장 많은 논쟁이 벌어지는 요즘이지만 저는 여전히 언어가 주는 브랜딩의 힘을 강하게 믿고 있습니다.
군더더기를 1도 용납하지 않는 애플 같은 브랜드조차 헤드 카피에 힘을 빼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자신들의 언어를 더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브랜드를 만들어가니 말이죠.
04. 책을 통해서도 언급한 부분이지만 저는 Pro, Max, Mini, Air 같은 수없이 오랜 시간 사용해온 단어를 상업적으로, 그것도 브랜딩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언어로 만든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 애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선 멋진 단어 하나 찾아서 그럴싸한 카피로 얼버무리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신념을 바탕으로 선택된 단어에 혼을 불어 넣는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고 봐요. 그래서 저는 '애플이 주는 그 특유의 감성'에는 디자인, 텍스처, 제품 포장, 스토어 등 다양한 요소와 더불어 언어 역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05. ⟪언어의 천재들⟫이란 책을 쓴 미국의 언어학자 마이클 에라드는 미국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브랜드 언어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업이 만들어낸 말과 글이 사용자에게 얼마나 왜곡 없이 정확히 전달되는지 그리고 실제로 어느 정도 의미 있게 사용되고 통용되는지를 수치화한 실험이었죠.
그 결과 애플은 다른 기업들을 압도적인 점수 차로 누르고 1위에 올랐습니다. 애플의 언어가 애플의 의도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결과였죠.
06. 이렇듯 저는 좋은 브랜드를 만나면 실제로 그 브랜드가 사용하는 언어를 중심으로 함께 대화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말이 통한다'라는 느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아니라 브랜드와 사람 사이에서도 가능하다는 걸 또 한 번 깨닫게 되는 거죠. 때문에 좋은 브랜드를 가르는 기준 중에는 그 브랜드만의 언어가 있느냐도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겁니다.
07. 여러분에게도 혹시 그런 브랜드가 있을까요? 저 브랜드가 하는 말이 나에게 와서 콕콕 박히는 그런 브랜드, 동시에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갈구하는 로망을 멋진 언어로 바꿔서 이야기해 줄 줄 아는 브랜드 말입니다.
비주얼 플레이가 차고 넘치는 시대지만 그럴수록 브랜드 언어에 한번 집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때로는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이 많은 것을 대표하고 대변하며 우리의 인식을 기분 좋게 잠식해 줄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