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스타트업 퇴사 후 벤처캐피탈 관련 글쓰기에 집중하며 벤처캐피탈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찾아뵙고 있다. 이번에는 일반인 기준에서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력을 가진 임영철 이사님을 찾아뵈었다.
연봉에 가까운 성과급을 지급하며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원직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리스트로 근무하는 분이었다. 그의 지난 행보를 카페구석 1열에서 육성으로 듣던 중 흥미로운 표현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다름 아닌 '덕후'였다. 삶과 일의 경계 없이 자기 일에 푹 빠진 그를 설명하는데 덕후라는 단어보다 더 적합한 표현은 없었다. 😆
⬇ 진행된 인터뷰 중 일부 ⬇
Q.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였는데 다양한 선택지를 두고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면접까지 통과했지만, 색약으로 인해 신체검사에서 낙방했어요. 반면, 삼성전자 반도체는 색약을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제약사항으로 보지 않았어요. 제가 물리학 전공이라는 이유로 인사팀에서 제가 광학 분야에 적합하다고 판단을 한 건지 광학 분야 연구 개발자로 배치되었어요.
연구개발이라면 보통 기초연구와 응용화 연구 그리고 연구성과를 기초로 제품화하는 개발업무를 말해요. 그런데 고도화하는 과정에는 반복 작업이 많은데 고민이 되었어요.
한동안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었고 결국 반도체에서 벗어나 뭔가 제 시야를 넓혀줄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그래서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결심하였죠.
Q.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관인 Born2Global Centre에서는 어떤 업무를 담당하셨나요?
본투글로벌센터에서는 지원대상 스타트업 선별을 담당하였는데 4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검토했어요.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국내 스타트업 창업가들과 국외로 나가 해외 벤처캐피탈에 소개하기도 했죠. 당시 담당했던 스타트업 중 두 곳이 유독 기억에 남는데 공교롭게도 초성이 같아요. 북팔이라는 곳과 바풀이라는 기업이에요.
북팔은 웹소설을 서비스하는 스토리 콘텐츠 기업이에요. 초창기 일찍이 애플 앱스토어에서 앱을 선보일 정도로 시작이 빨랐어요. 타플랫폼들은 작품을 무분별하게 쏟아낸다면 이곳은 조금 더 작가를 배려하고 신진작가를 육성하려는 노력을 많이 해요. 덕분에 가치를 인정받아 2022년 2월 예스24에 인수되었죠.
바풀은 공통 관심사를 가진 학생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는 에듀테크 솔루션으로 문제를 사진으로 찍어 올리기만 하면 `바풀러`들이 실시간으로 문제를 푼 후 해답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거나 S펜이나 손가락으로 앱 내 화면에서 바로 풀이해주는 서비스에요. 2011년 시작한 바풀은 2016년 라인플러스에 합병되었어요.
Q. 문화콘텐츠 전문 창업투자회사 캐피탈원으로 옮기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벤처캐피탈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계속 업계 문을 두드렸지만 쉽지 않았어요. 그때 유일하게 제게 손을 내밀어준 곳이 캐피탈원이었죠. 캐피탈원은 2009년에 설립된 창업투자회사로 문화콘텐츠 투자를 주력으로 하는 회사에요.
캐피탈원은 문화콘텐츠 외에도 다양한 섹터로 투자영역을 넓혀가고자 했고 마침 제가 그 역할을 해주길 기대했어요. 덕분에 에너지 저장장치(ESS) 사업을 전개하는 기업인 데스틴 파워에 투자하는 등 산업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기업을 검토할 수 있었죠.
Q. 벤처캐피탈에서 근무 후 증권사인 유진투자증권으로 옮기셨는데 어떠한 변화가 있었나요?
마침 유진투자증권이 대형 증권사들이 독식하고 있는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을 때였어요. 2013년부터 해외기업 IPO를 꾸준히 진행했는데 2013년 미국 의약 제품 제조업체인 엑세스바이오를 시작으로 2016년 중국 화장품 제조사 오가닉티코스메틱, 2018년 중국 식품가공 업체 윙입푸드 등의 국내 상장을 주관했어요.
저는 유진투자증권 신기술투자팀에 있었는데 IPO팀과 긴밀하게 협업하였어요. 그래서 IPO팀과 기업탐방도 같이 가며 자주 소통한 덕분에 미약하게나마 IPO 관점에서 기업 가치평가를 하며 시야를 초기 스타트업에서 성장단계의 스타트업까지 확대한 계기가 되었죠.
하지만 증권사에서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과 제가 추구하는 가치관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기업의 성장성을 보고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를 하는 것을 선호한다면 증권사에서는 조금 더 안정성과 회수 가능성에 더 높은 비중을 두는 것 같았죠.
Q. 벤처캐피탈에서 전문투자자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커리어 관련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인생에서 커리어에서 어떤 걸 중요시하고 추구하는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수익이 최우선일지 아니면 워라밸이 중요한지 충분히 고민을 해보셔야 해요. 사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벤처캐피탈 리스트들이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요. 저 같은 경우, 어린 딸을 둔 덕분에 유아동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어 관련 스타트업을 검토하고 투자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아내가 장을 보러 가면 장바구니에 무엇을 담는지 유심히 살피고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매사 항상 관찰하고 탐구하는 자세로 임하게 돼요.
이외에도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중요해요. 벤처캐피탈에 종사하다 보면 잠재적인 투자처와도 가깝게 지내지만 동료심사역들과 잘 지내야 해요. 투자 건을 직접 발굴하기도 하지만 벤처캐피탈리스트들끼리 서로 투자 건들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LP라고 하는 VC 펀드에 투자하는 출자자들과도 자주 소통해야 해요. 출자해준 자금을 잘 운용하는 게 벤처캐피탈리스트이 기본적인 역할이고 소명인 만큼 리스크 관리를 충실하게 하고 투명한 소통을 할 필요가 있죠.
마지막으로 약간의 덕후 기질이 필요해요. 왜냐면 그 분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이해 수준이 깊고 관심이 커야 그 시장을 꾸준히 주시하게 돼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분야의 핵심 인물은 물론 시장 분위기까지 인지하게 되죠. 그래서 제가 복잡미묘하지만, 삶과 일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말씀드렸던 거예요. 이러한 환경을 스트레스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벤처캐피탈리스트로서 일하는데 적어도 회의감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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