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의 결혼식을 통해 본 핀란드 결혼문화] 한 나라의 정치, 경제와 교육 제도를 이해하려면, 그 나라가 사회 구성원들을 어떻게 문화적으로나 제도적으로 해석하는지 잘 알아야만 합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핀란드가 어떻게 "가정"이라는 기초 사회 구성단위를 해석하는지 적어보려고 합니다. 1. 산나 마린 현 핀란드 총리가 지난 주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총리 스스로가 인스타그램에 '사실 저 어제 결혼식을 했습니다'라고 사진을 쨘 공개했네요. 그걸 언론들이 '네, 어제 결혼했다고 합니다'라고 보도하는 것으로 끝. 허허... 한 국가 정상의 결혼식이 참 조용히도 치러지는군요. 2. 참고: 산나 마린 총리의 사례는 동거 - 법률혼 - 결혼식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핀란드식 결혼 풍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동성 부부 슬하에서 자란 1985년 생 여성이며, 20대 때부터 한 남성과 오랜 기간 법률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주말 결혼식을 올렸죠. 슬하에는 딸이 한 명 있습니다. 핀란드는 사실혼, 법률혼, 동거, 동성애 결혼 등이 두루 인정되는 나라입니다. 3. 핀란드 커플들은 썸이 끝나고 교제가 안정되고 있다 싶으면 슬슬 같은 집에서 살 준비를 시작합니다. 이 때 공동 명의로 월세집을 얻고 공동 명의의 은행 계좌도 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사실상 이 시점 부터 양가 가족들과도 안면을 틉니다. '우리 자식의 친한 친구' 정도 대우를 받으며 상대 부모들과 밥을 먹거나 가족여행에 따라간다는군요. 상견례 문화가 따로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4. 만약 커플 사이에 자녀가 태어났다면, 동거를 하든말든 사실혼 관계가 유지되고 있던 말던 이 둘은 양육권을 공동으로 책임져야 합니다. 핀란드 법은 아동의 양육/교육받을 권리를 우선시해서 해석하거든요. 그래서 부모가 특정되지 않은 아이라고 해도 출생신고가 되고, 학교에 갈 수 있으며,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동의 권리를 위해, 부모는 양육의 의무를 집니다. 국가도 평등+무상 교육으로 아동의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고요. ('부모가 자녀를 키울 권리' 부터 시작하는 한국의 법 해석과는 정 반대됩니다.) 5. 핀란드 사람들은 동거를 하다가 때가 되었다 싶으면 근처 동사무소에 가서 결혼신고를 합니다. 이를 '법률혼' 관계라고 해서, 법적으로 재산을 공동관리한다거나 소득세를 (개인별이 아니라) 세대별로 낼 수 있게 됩니다. 상대방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유산을 상속받거나 법정 대리인으로 출석도 가능하게 되죠. 즉,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경제/법적 공동체임을 문서화하는 절차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 부터 슬슬 서로를 '배우자'라고 호칭하기 시작합니다. 6. 제 주변의 핀란드 분들은 대학생 때 서로를 만나 학생용 임대아파트에서 동거를 시작하더군요. 졸업 후 직장을 얻고 소득세를 내기 시작하면 법률혼 관계로 슬슬 넘어갑니다. 법률혼 관계가 시작되는 날 (동사무소에 가서 결혼 신고하는 날)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모아 파티를 하기도 합니다. 7. 결혼식은 가장 마지막 단계입니다.핀란드 사람들은 법률혼으로 맺어진지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결혼식을 올리는 편입니다. 참고로 유럽에서 '결혼식'은 종교적인 행사라는 인식이 강한데요, 핀란드는 유럽 내에서도 무종교 비율이 상당히 높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굳이 왜 결혼식을 해야 하지? 난 종교도 없는데?'라며 아예 평생 결혼식을 올리지 않는 핀란드 커플들도 많습니다. 만약 한다고 해도 가족과 절친한 친구만 초대해서 치르는, 매우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으로 받아들여지죠. 여담) 핀란드에 사업을 하러 오신 한국 분들께서 흔히 하는 실수 중에 하나가 상대의 결혼 관계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입니다. 나름 친해지려고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해보려고) '아내 분은 잘 지내시나요?' '결혼은 하셨고요?' 등의 말을 꺼내는 거죠. 상대의 나이를 대뜸 물어보고는 '얼른 결혼하셔야죠!'라고 조언(?)을 하거나, '아니 결혼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애가 있어요?' 라며 지적(?)을 하는 경우도 봤네요. (아이고...) 하지만 핀란드의 동거-법률혼-결혼 문화 그리고 아동 권리 부여 원칙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나오는 말은 자칫 실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결혼'이 아니라 동거, 법률혼 관계이면 어쩌나요. 결혼은 안 했지만 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상대가 자신의 개인사를 말하고 싶지 않아 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떪떠름한 표정으로 "아내가 아니라 여자 친구입니다" 라거나 "내 개인사에 왜 당신이 관심을 가집니까"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죠. 고로 핀란드 분들과 신뢰를 쌓으려면 결혼, 가족 이야기는 일자리에서 굳이 안 하는 게 좋습니다 ㅎㅎ 핀란드는 총리도 결혼식을 하면서 인스타그램에 '사실은 저 어제 결혼했습니다'라고 조용히 올리는 나라라는 것, 잊지 마세요 ㅎ 여담 2) 만약 한국에서 총리/대통령급 인사가 동거 후 결혼식을 올린다고 상상해보세요. 훨씬 더 시끌벅적하겠죠? 음... 우선 결혼식 규모를 가지고 온갖 언론사들이 추측성 기사를 낼 것이고, 결혼식 수준을 가지고 여당/야당이 나뉘어 논평을 낼지도요. 참 이렇게나 문화와 관점이 다릅니다.

Prime Minister Sanna Marin weds long-term partner

News

Prime Minister Sanna Marin weds long-term partner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또는

이미 회원이신가요?

2020년 8월 3일 오전 8:59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