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타인을 설득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라"
조선비즈
건전한 갈등은 뭔가 진전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고도 갈등은 그 자체가 목적지다. 정치적 양극화, 이혼, 층간소음 분쟁, 노동 쟁의에 이르기까지…옴짝달싹할 수 없는 고도 갈등의 풍경을 보라. 문제는 교착 상태! 시야가 좁아지면, 상대를 악마화하고 결국 가장 소중한 것에 해를 입힌다.
노련한 갈등 전문가는 경고한다. “충돌이나 슬픔 없이 사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갈등이 고도 갈등으로 변하면 마음의 집을 태워버립니다.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짜릿한 도파민이 분출된다고 해도, 곧 분쟁, 폭력, 비방전 등이 뒤를 잇습니다. 고도 갈등에 승자는 없어요.”
책 <극한 갈등>에는 고도 갈등을 건전한 갈등으로 변화시키는 패턴과 다양한 해법이 등장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극한 갈등>의 저자 아만다 리플리를 인터뷰했다. 아만다 리플리는 맬콤 글래드웰 등 최고의 언론인에게 수여되는 ‘타임’지 매거진어워드를 두 번 수상했다.
✅고도 갈등은 무엇인가?
🅰️고도 갈등은 선과 악의 구도, 우리와 그들 간의 경계를 긋는 갈등이다. 모든 관계가 대결의 양상을 띠고, 시간이 갈수록 나의 우월성과 상대의 미스터리가 커진다. 그들이 하는 말은 전부 위험하거나 제정신이 아니거나 무지한 소리로 들린다.
사실 우리는 싸우려는 본능만큼 평화를 추구하는 마음도 간절하다. 하지만 고도 갈등의 노예가 되면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갈등의 제물로 바치게 된다. 돈과 피, 우정 등 모든 면에서 큰 대가를 치른다.
✅건전한 갈등과 어떻게 구별되나?
🅰️갈등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마찰 즉 건전한 갈등은 우리를 더 나은 상태로 이끈다. 스트레스와 분노를 동반하지만, 자존감이 꺾이진 않는다. 반면 고도 갈등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
✅한 사회의 갈등 정도는 어떻게 진단할 수 있나?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라. 우리 사회는 ‘다른 편’의 고통을 즐기는가? 갈등을 묘사하기 위해 언론이 거창하고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는가? 음모론이 존재하는가? 갈등을 끝내기 위한 말과 행동이 대체로 그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가?
✅우리는 왜 점점 더 서로를 괴물로 보게 되었을까?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증오도 일종의 증상이다. 고도 갈등에 대한 증상. 그리고 고도 갈등은 일종의 시스템이다. 적대적인 법률체계, 정치 뉴스, 소셜미디어 플랫폼…
주변을 둘러보라. 갈등이 반복된다면 분명 당신 주변에 그 갈등의 촉진자들이 있을 것이다. 정치적 갈등에서 벗어나려면 케이블 방송과 SNS를 줄이고, 이혼을 앞둔 부부라면 싸움을 붙이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여야 한다.
✅고도 갈등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더 주도적인 해법은 없나?
🅰️최고의 해법은 경청이다. 남의 말을 듣는 것과 듣는 척 연기하는 것은 다르다. 사람들은 남에게 이해받기를 너무나 갈망한다. 상대가 내 말을 듣는다는 느낌을 받으면 마법이 일어난다. 스스로 모순을 인정하기까지 한다. 웅덩이를 빠져나오려면 진짜 들어야 한다.
비록 사실과 다른 말을 하더라도 정성을 다해 들어주는 것만으로 갈등의 악순환은 멈출 수 있다. 들은 후 이게 맞는지 재확인 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 들은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정확히 표현해주면 상대의 눈빛이 달라질 것이다. “맞아요! 그거예요!” 그게 바로 이해의 순환고리다.
✅의사소통에도 환상이 있다는 건 무슨 말인가?
🅰️자신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놓고 그렇게 했다고 착각하는 거다. 문제는 우리가 자신의 욕망조차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위선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뿐 아니다. 인간은 화를 낼 때 두뇌에서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영역이 자동으로 멈춘다. 그래서 제3의 중재자가 필요하다.
✅서로 의견이 달라도 고도 갈등에서 빠져나올 수 있나?
🅰️동조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멸종위기에 처한 늑대가 마을의 농작물을 해칠 때 환경론자와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의견 대립이 일어났다. 그들은 서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다만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입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낯선 외국어 학습하듯, 낯선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서. 서로 적이 아니라는 안전 신호 속에서, 서식지에 집라인을 설치해서 관광 상품화하자는 재미난 아이디어도 나왔다.
✅우리가 타인을 설득할 수 있다는 건 착각인가?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생각에는 ‘내가 옳고 당신은 그르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늘 내가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고 설득하려고 하는가? 이제는 제발 SNS에 그런 글을 올리지 말아라. 그런 행동은 역풍을 불러온다. 남을 설득하기 전에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해하려면 경청해야 한다.
✅갈등을 연구하기 이전과 이후 당신은 어떤 점이 달라졌나?
🅰️명상하는 습관과 사람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습관이 새로 생겼다. 명상하면 갈등 상황을 마음속으로 재평가할 수 있다. ‘정신적, 감정적 발코니’로 물러나 갈등 상황을 조용히 바라본다. 상상의 발코니는 고요하고 자기 절제가 가능하며, 오로지 이 관계의 진정한 목적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이다.
✅갈등의 극한 지점을 오가는 한국인들이 좀 더 현명하게 이 시기를 지나가기 위한 조언이 있다면?
🅰️결혼 연구의 권위자인 가트맨 박사는 수많은 임상 연구를 통해 ‘경멸적 언어를 쓰는 부부는 99% 이혼한다’는 걸 발견했다. 싸움의 횟수와 상관없이 그렇다. 경멸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황산을 뿌리는 것과 같다.
언어가 중요하다. 범주라는 영어 단어는 비난이라는 그리스어에서 기원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한데 묶어서 ‘그들’ ‘저 사람들’이라고 부르지 않으려고도 조심한다. 사람은 너무도 쉽게 서로를 악마화할 수도 있고 반대로 협력할 수도 있다.
스스로 갈등 촉발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라. 다양한 논조를 읽어라. 복잡한 글을 읽은 사람은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높은 수준의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복잡성은 전염된다. 호기심도 전염된다. 갈등이 극한에 달했다고 할지라도 더불어 살아가려는 태도가 있으면, 갈등은 반드시 극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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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6일 오후 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