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경영자 모임에서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K사장이 멀미를 하게 됐다. 그분은 멀미를 한 게 민망했던지, “아까 먹은 찹쌀모찌가 이상했던 것 같다. 모찌 때문에 평생 안 하던 멀미를 다 한다.”고 지레 변명을 하셨다.


그러자 다른 경영자 G사장이 농반진반, 통박을 주시며 한 말씀하셨다. “모찌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십니까? 우리 모두 같이 먹었는데 소화 못 시키고 탈난 K사장님 잘못이 아닙니까?” 모두들 웃고 말았지만 필자는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리더십은 유치원 반장 선거부터 국가 통치까지 ‘약방에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그 개념에 대해선 동상이몽인 경우가 많다. 로스트(Rost)에 따르면 리더십을 연구하는 학자들조차 책이나 논문을 쓰면서 95%가 리더십이 무엇인지 제대로 정의하지 않은 채 시작한다고 한다.


모두가 다 안다고 가정하는 ‘거시기’이지만, 사실 리더십의 정의는 관점에 따라 다양할 수 밖에 없다. 오죽하면 지구에 존재하는 인구의 수만큼 다양한 정의가 존재한다는 말을 하겠는가.


그러나 필자는 리더십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그 핵심이자 출발점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바로 ‘너부터 하라!’가 아닌 ‘나부터 할게!’이다. ‘세상(상사, 회사, 구성원) 때문에’가 아니라 ’나 때문에‘로, 원인을 리더 자신에게서 먼저 찾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닥친 어떤 일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성향의 사람을 내부통제자라고 한다. 통제의 위치가 내부에 있을 때 비로소 ‘운명은 내 손안에 있을 수’ 있다. 모든 일의 원인을 환경과 남 탓으로 돌릴 때 나는 외부 환경의 볼모가 된다.


실제로 통제 위치를 환경 탓으로 돌리는 외재론자와 내재론자 사이에는 조직행동에서도 중요한 차이를 보인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내 탓’의 내재론자는 ‘네 탓’의 외재론자보다 동기 수준이 높다. 성과가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믿는 내재론자는 외재론자보다 업무와 관련된 문제 해결이나 학습에 있어서도 높은 성과를 나타낸다.


요즘은 조직에서나 가정에서나 “모두 네 탓이오”의 지적질만 넘친다. 리더층은 “누군들 소리 지르고 싶나, 구성원이 도저히 따라주지 않으니 난들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한다. 구성원들은 “다른 회사, 옆 부서 OO부장은 잘해준다는데 우리 상사는 영…” 하며 고개를 외로 꼬고 입을 댓자 내민다.


모두 네 탓, 상대의 잘못 뿐이다. 리더십에 대한 지식 학습은 자신을 돌아보기보다 ‘상대의 잘못’을 체계적으로 공격하는 이론적 중무장에 기여할 뿐이다. 리더십이 어려운 것은 알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하기 힘들어서인데 말이다.


필자는 한자 ‘敎(가르칠 교)’보다 우리말 ‘가르치다’를 더 좋아한다. ‘敎’는 배움 효(爻) 자와 채찍질할 복(攴) 자가 합쳐진 것이다. 매로 채찍질해서 배우게 한다는 뜻이다. 반면 우리말 ‘가르치다’는 갈다와 치다의 합성어로 연마한다(칼을 갈다)와 양육하다(양을 치다)는 뜻이 합쳐진 것이다.


리더는 ‘왜 안 되느냐!’고 상대에게 억지로 채찍을 휘두를 때가 아니라, 나부터 갈고 닦아 연마하고 양육할 때 만들어진다. ‘너 때문에’가 아니라 ‘나 때문에’로 지적질의 방향을 바꿀 때, 비로소 조직엔 리더가 강처럼 넘쳐나게 될 것이다.

[경영칼럼] ‘네 탓’만 넘치는 시대 ‘내 탓’에서 리더십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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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네 탓’만 넘치는 시대 ‘내 탓’에서 리더십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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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3일 오전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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