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
Brunch Story
나이가 들수록 언어의 무게를 점점 더 강하게 느낀다. 내가 쓰는 언어가 곧 나의 지성을 드러내며, 내가 쓰는 언어대로 내 모습이 그려지고 삶이 전개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함이 더해진다. 지금 내 세계에 있는 언어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것인지, 내 언어의 세계를 어떻게 하면 더 넓힐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이 고민은 어쩌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어학자이자 작가인 김종원 저자는 언어에 대한 이와 같은 고민을 16년 가까이 해왔다고 한다. 사람들이 비슷 비슷한 텍스트를 접하지만 모두의 변화가 제각각인 이유에 대해 오랜 사색 끝에 자신만의 답을 찾았고, 그 이야기를 총 30권으로 구성된 『김종원의 세계철학전집』에 담았다. 책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는 세계철학전집 두 번째 시리즈로, 저자는 평생을 '언어'와 '생각'의 본질을 탐구했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을 연구해 실제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풀어냈다. 책은 총 75가지 조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나는 이 책이 크게 언어의 '쓰임'과 '확장'을 말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잘 써야 하는 언어에는 세 가지가 있다. 부정의 언어와 다정한 언어, 그리고 가능성의 언어. 부정의 언어는 말 그대로 나쁜 기운의 언어다. '한 발 없는 완주 성공'이 아닌 '한 발로 완주 성공'처럼 없는 것이 아닌 있는 것에 집중한 언어를 쓰는 것, 자기 자신에게 부정적인 언어를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은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흥미로운 건 타인이 내게 던지는 부정의 언어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상대방이 던지는 수많은 말을 받는다. 그 말에는 좋은 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말들도 다수 있다. 저자는 일상에서 타인의 말에 자꾸 휘둘리고 감정이 상한다는 것은, 그걸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스스로에게 부정의 언어를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상대방의 부정의 언어도 가려내 던져버릴 줄 알아야 한다. 말은 상대방의 수준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니 "그 수준을 섬세하게 살피면, 그들의 입에서 나온 비난과 비판에 말에 굳이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다정한 언어는 배려와 기품이 깃든 언어를 말한다. 다정한 삶을 살아야 다정한 언어를 쓰는 사람이 된다. 다정함이 몸에 배어야 언어 수준도 그에 맞게 나올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어렵다. 나는 개인적으로 다정한 언어를 쓰는 데 서툰 사람이다. 다정함은 세심함과 상대방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는데, 섬세하지 못한 성격일뿐더러 보통 시선이 남이 아닌 나에게 향해 있다 보니 다정한 언어를 내가 쓰기보다는 주로 듣는 입장에 있었다. 하지만 다정한 언어를 쓰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과 공간이 얼마나 따뜻한지 많이 경험해 봤기 때문에,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돼주고 싶다.
가능성의 언어는 자신의 한계를 규정짓지 않는 언어다. 책에서 든 오타니의 사례가 재밌다. 오타니는 세계적인 일본 야구선수다. 오타니가 신인이었던 시절, 야구 연습을 하느냐 회식에 자주 빠졌다고 한다. 하루는 동료가 "너 그렇게 회식에 자주 빠지면, 사교적이지 못하다고 사람들이 널 싫어하게 될 거야."라고 말했는데, 오타니는 그에게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면, 모두가 저를 좋아하게 될 겁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아무도 자신을 눈여겨보지 않았던 시절에도 스스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라 굳게 믿었던 오타니. 결국 꿈을 이루어내는 사람들은 언제나 가능성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다.
책의 한 축은 '언어의 확장'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독서와 글쓰기만큼 언어의 세계를 넓히는 데 좋은 도구는 없다고 말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언어가 정말 확장될까? 꼭 그렇지는 않다. 핵심은 '양'이 아닌 '과정'에 있다. 다독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를 하는 과정에서의 '사유'다. 한 권을 읽어도, 천천히, 자주 멈추고, 깊이 사색하며 읽으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사색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질문한다는 것이다." 질문하고 답해야 내가 진짜 모르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래야 읽은 것을 100%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나는 양으로만 승부하는 피상적인 독서가 언어를 확장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깨달은 바 있다. 주에 몇 권, 1년에 몇 권 목표치를 정해놓고 독서'량'에 매달렸던 때가 있었다. 어떤 책을 읽었냐 보다 얼마나 읽었냐가 중요한, 아무런 의미 없는 카운팅. 한 달에 몇 권씩 책을 읽어도 누군가에게 책을 소개할 때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좋았어, 재미있었어" 밖에 없음을 깨닫고 독서방법을 고쳤다. 책을 손에서 놓고 있지 않는다면 한 달에 몇 권을 읽었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이 책에 깊게 빠져들었고, 이 책을 읽기 전과 후 하나라도 배운 점이 있다면 내 세계가 확장되는 독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고를 때도 보는 측면을 다양화하는 게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마케터라고 해서 마케팅 서적만 읽으면 그 마케터는 마케터의 언어 안에서만 생각하게 된다. 반면, 마케팅의 본질과 연결돼 있는 심리, 기획 등의 키워드로 확장해 독서의 경계를 넓힌다면 마케터의 언어 밖으로 생각을 확장할 수 있다. 다수를 감동시키고 열광시키는 새로운 기획들은 이렇게 경계를 허물고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영역들의 합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익숙한 것들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계속해서 필요하다.
책을 읽고 나서,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보니 하나같이 쓰는 언어의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다. 어렸을 때는 만나면 그냥 즐거웠지만 언젠가부터 불편하다고 느끼는 관계들을 보면 쓰는 언어들이 달라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남아 있는 관계는 결국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이제는 온몸으로 공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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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7일 오후 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