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타인의 고통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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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밖에 없는 사회에서 ‘나만 잘 사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법이다. 누군가의 고통이 쉽게 잊혀지는 사회에서는, 나의 고통 또한 가볍게 여겨질 수 밖에 없음을 기억하자.
세계사를 들여다보면,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다른 종교나 민족 등을 이유로 갈등을 빚어온 지역들이 있다. 코소보를 둘러싸고 세르비아인들과 알바니아인이 충돌해 온 것이 대표적이다. 한때 이 지역의 긴장감이 완화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여전히 갈등의 고조와 완화가 반복되며 양쪽에 많은 상처를 내고 있다.
한국 역시 이웃의 일본, 중국과 오랜 시간 반목해 온 역사가 있고 식민지 시절을 겪은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기에 역사적 비극이 반복되는 것이 남의 이야기 같지만은 않다.
이슬람 보린카 그로닝겐대 연구팀은 알바니아인 855명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한 그룹에게는 평범한 세르비아인들이 과거에 자신의 국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메시지를 보게 했고, 다른 그룹에게는 세르비아 정부 관계자가 사과하는 메시지를 보게 했다. 또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사과의 메시지가 없는 소식을 보게 했다.
그 결과 보통의 세르비아인들이 과거의 잘못에 대해 후회를 내비치고 사과의 마음을 전달하는 메시지에 사람들의 마음이 가장 크게 움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관계자가 사과했을 때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후회의 마음을 내비쳤을 때 알바니아 사람들은 세르비아와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의향을 더 크게 내비쳤다.
또한 정부 관계자보다 보통의 세르비아인들에게 사과를 받았을 때, 세르비아인들도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인식이 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갈등을 빚고 있을 때는, 외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향해 인간이 아니라거나 짐승, 바퀴벌레 같은 존재라며 해당 집단의 사람들의 인격을 깎아 내리는 ‘비인간화’가 흔히 나타난다.
이런 비인간화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학살하는 일도 서슴지 않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보통의 세르비아인들로부터 사과를 받았을 때 알바니아인들은 상대를 더 ‘인간화’해서 바라본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이러한 인간화는 우리 집단이 타 집단보다 더 큰 피해를 봤다고 하는 ‘경쟁적 피해의식’ 또한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겪은 과거의 트라우마에 대해, 시간이 지났으니 그만 좀 잊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과거의 상처가 지금까지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는데도 마치 과거와 현재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나의 개인적인 상처가 그렇듯이, 개인과 집단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의 문제들도 최소한의 ’종결‘이 필요하다. 어떤 것이 잘못이었으며, 지금이라도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대화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미 끝났는데 자꾸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아직 이 문제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고, 계속 이야기해야 조금이라도 더 모두에게 이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함께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한 성찰의 시도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아마도 생각하기 귀찮아서, 심각한 분위기가 싫어서, 나의 고통은 위로받지 못했는데 남의 고통이 위로 받는 걸 보니 배 아파서, 그냥 현상 유지하는 게 좋아서, 내 기분이 편안한 게 가장 중요해서, 남이 고통받든 말든 나만 잘 살면 돼서, 또는 찔리는 것이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결국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밖에 없는 사회에서 ‘나만 잘 사는 것’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법이다. 누군가의 고통이 쉽게 잊혀지는 사회에서는, 나의 고통 또한 가볍게 여겨질 수 밖에 없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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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19일 오전 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