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어린이날과 부처님 오신 날 연휴를 맞이하여 가족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어제는 계획한 여행 첫날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안면도로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습니다. 어제는 차를 타고 안면도로 여행을 출발했습니다. 서울에서 안면도까지 거리는 약 166킬로미터로 자동차로 2시간 내외 소요됩니다. 그 정도 소요되리라 알고 오전 7시 전후로 출발하면 도로에 차도 별로 없으리라 믿었습니다.

오전 8시에 출발한 우리 가족은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도착 예정 시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내비게이션은 안면도까지 3시간 30분이 넘게 걸린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약 1시간 30분 이상 더 소요된다는 것은 현재 도로에 차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정체된 도로 위에 시간을 보내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으로, 이와 같은 상황이 절망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여행을 취소할 수 없었고, 행복한 연휴 첫날부터 가족에게 불만을 표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마인드 컨트롤하며 출발했습니다. 원래 평소에도 차가 많은 구간은 그러려니 잘 통과했습니다. 문제는 내비게이션이 짧은 소요 시간이라고 알려준 경로를 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분명히 최단 경로라고 이야기했는데, 차가 꽉꽉 막혀서 예상 도착 시간이 조금씩 점점 늘어나는 것이었습니다. A 내비게이션을 불신하고, B 내비게이션으로 다시 경로 탐색했습니다. 그러나 B도 마찬가지였고, C도 비슷한 정보를 안내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포자기 심정에 돌입했습니다.

차에서 보낸 시간이 3시간을 경과했을 때, 이제는 최단 경로를 포기하고 큰 길로 진입하여 휴게소에 차를 대고 쉬고 싶었습니다. 장거리 운전뿐만 아니라 의자에 오래 못 앉아있는 사람으로 3시간 연속 착석은 고민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10킬로미터 떨어진 휴게소까지 소요 시간이 1시간 정도 걸린다고 보았을 때, 2차 절망과 함께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황금연휴에 도로 위에서 4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억울했습니다. 이런 날 휴가 계획을 제안한 가족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차라리 해외여행을 갔더라면 차 막히는 도로 위 경험은 없었을 텐데, 별 쓸데없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휴게소에 도착해서 땅을 밟았을 때, 비로소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치 오랜 시간 답답한 환경에 갇혀 지내다가 세상 밖으로 나온 느낌이었습니다. 국수로 허기를 채우고 나니 불만과 원망이 사라졌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자아가 부끄러웠고, 그런 모습을 보여준 가족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러나 다음에 또 비슷한 상황, 그러니까 도로 위 정체를 고스란히 겪는다면 또다시 떼쟁이 어린아이로 변신할 것입니다. 오히려 아이들은 씩씩하게 답답한 시간을 잘 견디는 모습을 보고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아이만도 못한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5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한 안면도의 숙소에서 침대에 누웠을 때, 기절하는데 걸린 시간은 10초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아내는 밖으로 구경을 가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얼마나 잤는지 깨닫지 못하고 비몽사몽 무거운 몸을 끌고 숙소 밖으로 나갔습니다.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전통 시장 구경을 했습니다. 바닷가에 붙어있는 도시답게 전통 시장에 수산물이 풍부했습니다. 그런데 방문한 시간이 조금 늦었는지 시장은 한산한 모습이었습니다. 시장의 시계로 오후 6시는 장사를 마무리하는 일정이었던 것입니다. 하긴 회사도 9 to 6가 보통이지요?

게국지와 간장 게장을 배부르게 먹고 빛 축제를 하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꽃이 가득한 정원에 알록달록 전구로 조형물을 전시한 곳이었습니다. 5월이면 날씨가 따뜻하다 못해 살자 더운 것이 정상인데, 어제는 바람이 제법 쌀쌀하게 느껴졌습니다. 코를 훌쩍이며 아들과 딸을 쫓아다니며 사진을 연신 찍어주었습니다. 이제 좀 컸다고 평소 보기 어려운 풍경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사진 찍어달라는 요청을 하는 아들과 딸이 신기하고 즐거웠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평소에 잘 하지 않는 맥주를 마시며 티브이를 봤습니다. 저에겐 작은 일탈이자 소소한 재미로 하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이제 맥주 마시며 티브이 보는 행동이 재미있고 즐거운지 잘 못 느끼겠습니다. 어쩌면 더 생산성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마음을 누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일을 하진 않았습니다. 가만히 누워서 하릴없이 스마트폰을 뒤적이다가 졸음이 찾아와서 얼굴에 전화기를 떨어뜨렸습니다. 전화기를 내팽개치고 잠이나 자자 싶었습니다.

특별하고 대단하진 않았지만,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이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 첫날이었습니다. 기억은 왜곡되어 차 막힘으로 고통받은 시간은 까마득히 잊힌지 오래된 느낌입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요, 저는 어린아이 같은 솔직하고 덜 익은 마음을 가진 사람인 것을 새삼 깨다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