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스템 빌더이다

구성원들과 일대일(1on1)이나 손님과 커피챗 등을 하다 보면, 종종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때로는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대화에 임하는 분들도 있지만, 많은 경우 막연함을 느끼거나 혹시나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급함(FOMO) 속에서 섣부른 결정을 꺼내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때 나는 조용히 여쭙곤 한다. "몇 년 뒤, 어떤 모습의 개발자가 되어 있기를 바라시나요?" 이 질문을 시작으로, 함께 커리어 방향을 구체화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찾아보고,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며 실마리를 풀어가곤 한다.


나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왔다. 제조 기업의 전산실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해, 시스템 통합(SI) 프로젝트의 역동성을 경험하고, 이후 플랫폼 기업에서 대규모 시스템의 복잡성을 배웠으며, 지금은 디지털 제품을 만드는 스타트업에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십여 년간 다양한 산업 도메인에서 엔터프라이즈급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일을 해왔다. 돌아보면 운이 좋게도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과 잘 해낼 수 있는 영역을 발견했고, 이를 바탕으로 커리어를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만들어올 수 있었다.


나는 특히 소프트웨어의 아키텍처, 즉 애플리케이션의 전체적인 구조를 설계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 깊은 흥미를 느끼며, 이 부분을 비교적 잘 다룬다. 여기서 '잘 다룬다'는 것은, 초기 단계에서 비즈니스의 요구사항과 기술적 제약을 고려하여 필요한 수준의 추상화를 통해 유연한 구조를 제안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애플리케이션의 개선 지점을 찾아내고, 구조를 점진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활동까지 포함한다.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처음부터 설계하고 구축하는 경험도 소중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운영되어 온 레거시 시스템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며 현대적인 기술로 진화시키는 과정 역시 나에게 큰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러한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개별 애플리케이션을 넘어 다수의 애플리케이션과 인프라스트럭처가 복잡하게 얽힌 시스템 전체의 청사진을 그리고, 이를 실제로 구현해내는 역량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비즈니스의 장기적인 목표와 변화에 발맞춰 시스템 구조를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에 걸쳐 어떻게 가꾸어 나갈지에 대한 로드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시스템 빌더(System Builder)라고 소개한다. 이는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호칭은 아니지만,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을 가장 잘 담아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시스템 빌더란 단순히 코드를 작성하는 것을 넘어, 비즈니스의 목표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기술적인 해결책으로 구체화하여 안정적이고 확장 가능한 시스템이라는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사람을 의미한다. 또한, 시스템이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민하고, 필요한 기술과 자원을 조율하며, 때로는 복잡한 문제들 사이에서 최적의 경로를 찾아내는 길잡이 역할까지 포함한다. 물론 나를 구성하는 다른 많은 역량과 경험들이 있겠지만, 내가 어떤 개발자인지를 설명하는 데 있어 이 시스템 빌더라는 정체성이 가장 명확하고 핵심적인 설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자신을 어떤 개발자로 정의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은, 앞서 구성원들과 나눴던 "몇 년 뒤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나에게 시스템 빌더라는 호칭은 오랜 시간 동안 내가 걸어온 길과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담아낸 나만의 답변인 셈이다. 이처럼 스스로의 강점과 열정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때로는 어렵고 시간이 걸릴지라도 커리어를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자신만의 '무엇'을 찾아내어 커리어를 만들어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또는

이미 회원이신가요?

2025년 5월 16일 오전 5:04

댓글 3

함께 읽은 게시물

앱 개발 개척시대

A

... 더 보기

앱 개발 개척시대

K리그 프로그래머

앱 개발 개척시대

 • 

저장 4 • 조회 1,188


우선순위에 대한 고민

SI,협약기반,셀프 서비스를 하면서 느끼는 커스터머및 장애 이슈대응

... 더 보기

이력서에 쓰는 경험



... 더 보기

"누가 왜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P

... 더 보기

누가 왜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Brunch Story

누가 왜 그렇게 하자고 했어요?


비개발자도 Cursor AI로 결제 가능한 웹 서비스 만들기 🚀

6

... 더 보기

비개발자도 Cursor AI로 결제 가능한 웹 서비스 만들기 🚀 (6차. 25.06.21, 25.06.28) - Learning by Doing

Latpeed

비개발자도 Cursor AI로 결제 가능한 웹 서비스 만들기 🚀 (6차. 25.06.21, 25.06.28) - Learning by Do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