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해야할 일과 카카오톡이 해야할 일을 구분하지 못했다
REDBUSBAGMAN | 빨간색 버스에 가방을 메고 탑니다
이번 카카오톡 업데이트는 불편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변화를 거부하는 사용자 심리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단순히 수익 증대만으로는 사용자 경험 악화를 정당화하기 어렵습니다. UX 리서처로 일을 하며 갖고 있던 것들이 부정당하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 몇 가지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첫째. 위기에서 잘 하면 혁신이고 광폭행보이지만 어설프면 우왕좌왕입니다
카카오가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기업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카카오의 성공방정식은 카카오톡 기반의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를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비즈니스 영역에 침투한 후 네트워크 효과로 경쟁우위를 확보하여 IPO를 진행하는 전략이었죠. 그 과정에서 골목상권, 대기업 지위의 플랫폼 기업이 해야 할 일인가? 문어발식 경영과 내수 비즈니스에만 국한된 모습 등이 비판의 대상이었죠. 비판받을 수 있지만 카카오는 그런 전략을 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업데이트가 불편한 이유는 카카오가 할 일을 이래도 저래도 잘 안 되니 '톡'으로 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카카오는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내수 서비스에서 확장하지 못했고, IPO를 했던 기업의 주가는 공모가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트워크 효과로 재미를 누렸지만, 거꾸로 그 효과를 누리기 전 비즈니스를 영위했던 이익집단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택시기사들과 첨예한 갈등을 겪었고 상장에 실패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주가조작 문제로 창업자는 법의 심판대 위에 놓여있고 카카오 경영진 중 핵심 포지션(CPO, CTO 등)은 이미 혁신을 보여준 것 같은 기업에서 모셔왔습니다. 변화를 필요로 했던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카카오스토리와 틱톡 숏폼, 인스타그램 등에서 보여줬던 기능을 조합해서 업데이트하는 것이 혁신일까요?
둘째, 이번 업데이트는 '메신저로서의 균형감각'을 잃었습니다
카카오의 기업 정체성을 가장 잘 담고 있으면서 가장 큰 경쟁력이 된 것이 '톡'입니다. '톡'은 메신저입니다. 메신저 제품에서 중요한 것은 나와 연결된 친구로서의 '메신저'와 그와 주고받는 정보값 '메시지'의 균형을 잡는 것입니다. 이번 업데이트는 그 균형을 놓쳤습니다. 카카오톡에서 연결된 모든 사람이 동일한 관계성을 갖는 '친구'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했죠. 이 부분을 카카오톡도 알고 있기 때문에 '친구에게만 게시물 공개'라는 기능을 별도로 두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논리로 보면 이번 업데이트는 그럴듯합니다. 숏폼을 탑재했고, 광고는 늘었습니다. 이미 이런 광고구좌를 판매했으니 수익 관점에서 나쁠 것도 없습니다. 광고는 곧 돈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광고를 보지 않는 사용자들도 여전히 어쩔 수 없이 메신저를 사용할 테니 쉽게 이탈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욕을 하더라도 쓰는 사용자들 대부분은 사실 카카오톡 입장에서 돈이 되는 고객이 아니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UI/UX가 변경될 때 변화를 스트레스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사용자는 기본적으로 거부감을 갖습니다. 이탈이 강하지 않다면 그 거부감은 심각한 신호로 인식되기보다 소음으로 생각하고 귀를 닫아버립니다. 카카오톡이 원래부터 좋은 UI/UX를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픈채팅방에는 대화창 모양을 꼭 닮은 광고가 있었고, 광고는 점점 늘어났으며 '실험실' 기능은 언제 나타났다 언제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요? 기업은 업의 본질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카카오톡은 '메신저'이지 '숏폼 기반의 소셜미디어서비스'가 아닙니다. 본질을 놓친 기업은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잘 되는 것을 따라 하려고 하는 것은 혁신이 아닙니다. 기존에는 작은 기능 하나라도 '설정' - '실험실' 메뉴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던 기업이 많은 사용자가 거부하고 불편해하는 기능을 일방적으로 도입한 것은 기존의 서비스 성격과 비추어봐도 어색합니다.
숏폼 기능만 하더라도 소셜 미디어는 만 14세 연령제한을 걸어두고 있는데, 카카오톡은 채팅서비스이기 때문에 이 규제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개편한 세 번째 탭은 '오픈 채팅'에서 '지금' 탭으로 바뀌었고 누르면 곧바로 숏폼 콘텐츠가 나옵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지금까지 숏폼 중독을 우려해 틱톡, 유튜브 숏츠 등을 다 제한해 두었는데 허망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셋째, 정무적 감각이 보이지 않습니다
10대, 20대는 인스타그램 DM으로 소통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카카오톡은 여전히 온 국민의 90% 이상이 쓰고 있는 국민 서비스입니다. 이용자가 줄었다고 해도 4,500만 명 수준입니다. 2022년 10월,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이 '먹통'을 겪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국민 메신저'가 감당해야 하는 무게는 상당한 것이었죠. 유난하고 과할 정도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때 라인은 "긴급한 연락이 필요할 때, 끊기지 않는 "글로벌 메신저 라인"을 이용하세요"라는 문구로 네이버 홈화면, 검색창에 광고를 실었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장애가 복구되고 난 후 여전히 사람들은 카카오톡을 썼습니다.
무슨 플랫폼에서 정무적 감각을 이야기하는가 의문이 드실 수 있습니다. 이런 의문을 해소하려면 카카오, 네이버, 쿠팡 등 한국의 빅테크 기업 내에서 정무적 업무를 하는 대관 담당자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 대표이사나 경영진이 어떤 이력을 가졌는지 살펴보면 됩니다. 쿠팡의 강한승 전 대표만 하더라도 청와대 법무비서관 출신이자 김앤장 변호사 이력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국정감사에 우리 기업의 창업자가 대표가 나가지 않도록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답이 있습니다.
넷째, 사용성과 유용성을 모두 악화시켰습니다
'읽어도 1은 그대로'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읽으면 1이 사라져야 하는데, 그대로 남아있다는 말입니다. 모순입니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상대가 읽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1의 부재'였습니다.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내가 메시지를 읽지 않았음을 알리고 싶어 읽지 않고 '1의 존재'로 이를 증명했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 기능입니다. 1이 있어도 읽었을 수 있으니 보낸 사람은 헷갈리기 마련입니다. 메신저의 본질은 메시지의 전달입니다. 메시지가 혼탁해졌으니 1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기능이 론칭되는 것에 대해 내부에서 많은 반대가 있었다고 지인에게 들었습니다.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모두 반대했음에도 리더십의 결정으로 어쩔 수가 없이 기능을 개발해야 했던 것에 대해 조직에 속해 일하는 한 사람의 UX 리서처로서 속상함을 함께 느낍니다. 오히려 이번 일을 통해 리더십의 의사결정을 더 적극적으로 반대할 만한 추진력이 생겼으면 하는 어설픈 바람도 있습니다.
불편해도 어쩔 수 없이 카카오톡을 쓰는 사람들은 많을 겁니다. 하지만 숏폼을 사용하지 않고 핵심 기능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사용자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드레일 지표에 당장 손상이 가는 정도는 미미할 수 있겠지만 누적된 불만과 실망은 폭포가 아닌 계단식으로 서비스 이탈로 이어질 겁니다. 카카오가 해야 하는 숙제를 카카오톡을 빌어 시도한 것은 거꾸로 카카오가 할 일들의 뒷다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https://redbusbagman.com/kakaoandkakaotalk/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이미 회원이신가요?
2025년 9월 28일 오후 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