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의 시작은 어떻게 달랐나> 1. 김강석은 장병규를 게임 사업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봤다. 카이스트 출신의 장병규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었다. 2. 장병규는 그 차가운 머리로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잇단 성공을 거뒀다. 그가 네오위즈에서 내놓은 세이클럽은 온라인 커뮤니티 서비스였고, 뒤이어 창업한 첫눈은 온라인 검색 서비스였다. 이런 PC 온라인 서비스는, (장병규에게 어울리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업이었다. 3. 세이클럽은 이용자들이 "커뮤니티 안에 채팅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하면 능력 있는 개발자들이 서비스를 개발해서 적용하면 됐다. 온라인 검색 서비스도 마찬가지였다. 고객들은 키워드를 검색창에 입력해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얻길 바랬다. (따라서) 정보의 바다에서 사용자가 잡기를 원하는 물고기를 가장 재빠르고 정확하게 잡아서 가져다주는 (논리적인) 기술이 핵심 경쟁력이었다. 4. 하지만 게임 산업은 그런 방식으로는 돌아가지 않았다. 게임은 감성적인 부분이 주요하게 작동하는 흥행 비즈니스였다. 5. 게임은 당연히 재미있어야 흥행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느끼는 재미가 다르다는 게 문제였다. 누군가에게는 테트리스가, 또 다른 이에게는 지뢰 찾기가 재미있다. 밤을 새워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스페이드나 클로버 문양을 극도로 꺼리는 이도 있다. 6. (다시 말해) 재미는 사람마다 다르게 분포하는 것이다. (고로) 게임의 흥행이란, 저마다 품고 있는 재미의 파편 속에서 공통의 재미 감각을 엮어 올리는 예술이었다. 이 (연결의) 과업이야말로, 게임 제작자들의 숙명이자 능력이었다. 7. (그리고) 게임 제작자들은 저마다 확신과 기대에 차서 게임을 만들지만, 그 게임의 흥행 여부는 시장에 출시하기 전까지 판가름 나지 않는다. 게임은 시장에서 고객을 만나기 전까지 흥행을 예측할 수 없는 상품이었다. 8. 또한, 어떤 게임이 무엇 때문에 흥행했는지 제작진조차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게임 산업은 영화나 아이돌 산업처럼 '대박 아니면 쪽박'의 운명을 타고난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이었다. 이런 힘든 사업을 (논리적인) 장병규가 하겠다고? 9. 김강석은 장병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온라인 서비스 개발과 게임 콘텐츠 개발은 감수성이 굉장히 달라요. 일단 게임 동네는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몇백억 원을 수년간 투입해야 하는 게 MMORPG입니다. 예측이 안 되는 일을 (진짜) 하실 수 있겠어요? 그리고 이 사람들은 콘텐츠를 다루는 사람들입니다. 특정 분야를 파고드는 마니아 기질이 다분한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랑 안 맞아요. 게임회사를 차리면 우리와 매번 충돌할 겁니다" 10. 잠자코 듣고 있던 장병규가 입을 열었다. "일단 이 사람들 좀 만나보시면 어떨까요?" 11. (그렇게) 박용현 팀은 장병규와 함께 김강석을 만났다. 박용현 팀과 따로 만나길 여러 차례, 김강석은 장병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괜찮은 사람들이 맞군요. 철부지가 아니네요" 12. 김강석이 어떤 사람을 철부지라고 부를 때는 몇 가지 기준이 있었다. 꿈은 큰데 자기 위치를 모르거나, 시장에 대해 허황된 생각을 품고 있거나, 취미와 직업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13. 박용현 팀은 프로였다. 이들은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뚜렷한 근거를 들어 설득력 있게 말했다. "우리만 믿어달라"는 공수표를 날리지 않았고, "내가 해봐서 아는데" 하는 오만도 없었다. 14. 김강석의 머릿속엔 "잘 만든 게임이 곧 성공하는 게임"이란 등식이 없었다. 게임을 배급하는 퍼블리셔 회사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과의 협업, 그리고 대화가 가장 중요했다. 15. 특히 게임 제작을 이끄는 리더 그룹은 누구에게든 언제나 열려 있어야 했다. (사실) 게임 제작사에서 제 잘난 맛에 사는 나르시시스트는 천지에 널렸다. 이들은 대개 자신이 제작하는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전문가이긴 했지만, 동시에 자기 주관이 석고처럼 굳어진 지독한 확신범이었다. 그것이 너무 자랑스러운 나머지 다른 사람의 침입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 고집불통의 애송이이기도 했다. 16. (그런데) 박용현 팀은 무엇보다 대화가 가능했다. 김강석은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창업을 해도 되겠다 싶었다. 오케이 사인이었다. - 이기문, <크래프톤 웨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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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20일 오전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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