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화 '관리'가 아니라 '관심'이다
Brunch Story
재미있는 설문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직장인이 좋아하는 선배/후배 Top 5’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1위는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직장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배는 ‘조건 없이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었고, 가장 좋아하는 후배는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사람 마음은 다 비슷하다. 나는 기회만 주면 잘할 자신이 있으니 일단 믿어주기를 바라면서도, 타인에게는 믿을 만한 사람인지 확인한 후에야 무언가를 맡기고 싶은 것이다. 기회를 주지 않는다며 회사와 상사에게 서운한 마음을 품었던 것이 부끄러워 씁쓸하게 웃었던 기억이다. 직장 생활 10년 차, 능력에 비해 기회가 부족하다고 자만하던 그 시절에 부장님을 만났다. 그 분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의견을 물어보셨고, 찬찬히 내 말을 들으신 후에는 꼭 이런 말씀을 하셨다. “XX에 관해서는 네가 전문가였네.” “넌 000을 참 잘하는구나.” “난 그 일에 관해 회의할 때 네가 들어와 있으면 안심이 돼. 이번 건도 잘 부탁한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기도 하지만, 사람을 잠 안 자고 일하게 만들기도 한다. 부장님의 판단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어서, 날 믿어주는 분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 속된 말로 미친 듯이 일했다. 덕분에 기대하신 만큼의 성과를 내는 일도 잦아졌고, 자연스럽게 신뢰는 점점 더 커져 갔다. 부장님이 내가 가진 아흔아홉 가지의 단점을 보지 못해서, 그것들에 대해 아무 말씀 안 하신 게 아닐 것이다. 대신 관심을 갖고 오래 지켜본 끝에 내 작은 장점 한 가지를 찾아내신 다음, 그것부터 믿어주신 것이다. 그게 리더에게 얼마나 큰 모험인지 알게 된 이후, 부장님은 나의 롤 모델이 되었다.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당신이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다. 그 사람에게 보내는 신뢰의 크기만큼 그 사람도 보답할 것이다. 장점의 강화보다는 단점 보완에 집중하는 우리 문화에서, 다른 과목 전부 100점을 받아도 70점 받은 한 과목 때문에 혼나는 우리 교육환경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데 아무 영향이 없는 작은 흠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는 우리 사회에서, 먼저 신뢰를 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볕이라는 것을. 때로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일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을 이겨낸다면 신뢰는 사람을 변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 사람에게서 기적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2021년 12월 30일 오전 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