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깃팅을 벗어나면 보이는 것들 마케팅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지만 가끔 마케팅이 요구하는 타깃 중심의 사고가 시야를 좁히거나, 편협한 세계관을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어차피 우리 상품을 사줄 사람의 삶과 호오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 밖의 세상과 사람에 대해서는 무심해지기 마련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카페의 범람을 분석하는 유현준 교수의 코멘트를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가고 싶은 카페가 많아지는 세상은 어떤 면에서는 즐겁지만, 공공장소의 확충을 통한 통합된 사회라는 점에서는 적신호겠지요. 이것은 사업과 마케팅의 기회이지만 한 사회를 사는 사람으로서 마냥 좋은 상황은 아닐테고요. 일하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총체적으로 보는 노력을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서울에 카페가 많은 건 시민들이 앉아서 쉴 곳이 없어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한국인들에게 공간이, 특히 사적인 공간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무슨 뜻일까. 쉽게 말하면, 우리에게는 거실과 같은 공간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미국은 집이 1층은 주방과 거실로 주로 이뤄져 있고, 2층에 침실 등이 있다. 1층의 중심도 TV가 있는 거실이 아닌 가족 식사를 하는 테이블이 있는 주방이다. 그렇게 가족들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같이한다. 애인을 집에 데리고 와도 무리가 없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공간과 내 공간이 충분히 떨어져 있다. 반면 우리는 집에 충분한 공간이 없다. 대부분의 경우 집의 중심도 TV다. 부모와 함께 살든 그렇지 않든 서재처럼 나만의 공간을 확보한 집은 대한민국에 흔치 않다.” “맞다. 우리 도시엔 앉아서 쉴 곳이 없다. 공원도 없고 거리엔 그 흔한 벤치도 별로 없다. 앉으려면 돈을 내고 카페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누구는 4100원 내고 스타벅스에 가고, 누구는 1500원짜리 빽다방에 가게 된다. 경제적 배경에 따라 머무는 공간이 달라진다. 이게 왜 문제가 될까? 유 교수의 설명이다. “서로를 이해할 공통분모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의 경우 가난한 월급쟁이나 백만장자나 똑같이 핫도그를 사서 센트럴파크에서 쉰다. 이들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갖고 있지만 비슷한 추억을 공유한다. 그만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통분모가 커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도시에는 공짜로 즐겁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에 공유할 추억이 없고 그래서 서로 이해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왜 한국인은 연간 350잔이 넘는 커피를 마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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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0일 오전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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