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0년 전, 취준생이었던 저는 긴장된 마음으로 임원면접장에 앉아있었습니다. 제 앞에는 5명의 면접위원들이 생각을 짐작하기 어려운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있었구요. 당시는 압박면접이 유행(?)하던 때였는데, 저는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열심히 답하다가 한 질문에서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것은 "지원자가 하고 싶은 HR이, 동료들에게 어떤 가치를 준다고 생각하는가? 한 단어로 표현해달라" 였는데요, HR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정확히 모른 채 막연히 동료가 성과를 나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만 생각했던 저는 답을 할 수 없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30분 동안 영혼이 탈탈 털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그 회사가 제 첫 직장이 되었습니다 ㅎㅎ)
저에게 그 질문을 던진 분은 본인은 그 가치가 "만족"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는데요, 그 말은 지금도 저에게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HR에서 최근 몇 년간 떠오른 화두 중 하나인 "직원 경험(Employee Experience)"이 같은 맥락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객에게 좋은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을 제공하듯 내부 고객인 직원들에게 회사 생활에서 좋은 경험을 주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좋은 경험이 만족으로 이어지고, 만족을 느낀 직원은 더 높은 몰입도와 생산성을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경험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제가 이번에 읽은 "순간의 힘"은 그런 측면에서 약간의 시사점을 제공해 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순간"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강렬한 고양감을 느낀 순간,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통찰을 얻은 순간, 누군가에게 인정과 지지를 받고 나에게 자긍심을 느낀 순간, 그리고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교감의 순간입니다.
저자들은 다양한 사례와 연구들을 통해 이런 결정적 순간들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렬하게 남는지, 어떻게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데요, 그들은 이런 순간을 만들어내는 데 결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상적인 순간들을 중심으로 과거를 기억하기 때문에, 결정적 순간을 잘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경험을 실제보다 훨씬 긍정적으로 기억할 수 있습니다.
제가 HR담당자로서 "좋은 직원 경험을 만든다"는 명제를 어렵게 느꼈던 이유는 '좋다'는 개념이 우선 추상적/포괄적이고, 감동을 느끼는 순간을 만들기도 어렵거니와 그마저 반복될수록 희석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성원들에게 의미 있는 시점(전환점, 이정표)을 캐치해서 그들이 기대하는 이상으로 케어하고(각본 깨뜨리기), 불만은 적극적으로 대처하고(구덩이 메우기), 문제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통찰), 동료에게 인정받고 교감하는 경험을 만들 수 있다면(긍지와 교감), 조금 더 전략적으로 우리 동료들이 회사에서 느끼는 만족감을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ummary
1. 조직에게는 목표가 중요하지만, 개인에게는 순간이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삶 속에서 언제 구두점을 찍어야 할지 알아야 한다. 졸업식과 같은 전환점을 의미 있게 표시하고, 의미 있는 순간들을 이정표에 담아 기념하고, 부정적인 순간(구덩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결정적 순간이 만들어진다.
2. 결정적 순간을 만드는 요소는 크게 4가지 - 고양, 통찰, 긍지, 교감이다.
3. "각본 깨트리기"는 단순히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뜻밖의 놀라움을 선사하는 것이다.
4. 새로움은 심지어 시간에 대한 인식마저 바꿀 수 있다. 새로움을 느낀 순간은 상대적으로 오래 남으므로, 모든 순간이 참신해야 할 필요는 없다.
5.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게 하고 싶다면, 리더는 문제에 대한 명확한 통찰을 바탕으로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문제를 깨닫는 통찰의 순간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으며, 문제를 깨닫는 순간 행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뒤이어 드러난다.
6. 스스로를 확장함으로써 우리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킬 때, 그리고 그것을 지지해주는 타인 혹은 멘토가 있을 때 가능하다. 훌륭한 멘토는 높은 기준과 확신을 멘티에게 보여줌과 동시에 방향성과 지지를 덧붙인다. 단, 자기 확장이 위험을 없애주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보장하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자기통찰이다.
7. 우리는 물론 팀원들에 대한 인정과 칭찬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문제는 실행은 현저히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8. 매출액 같은 목표는 조직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직원의 동기를 끌어내기는 어렵다. 현명한 리더라면 그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길에 팀원들이 스스로 이정표를 세울 수 있도록 돕고, 내적 동기를 자극하는 것이 무엇인지, 평소에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축하할만한 성과나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찾아낼 것이다.
9. 용기를 내려면 단순히 두려움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어떻게 행동할지 미리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용기는 전염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10. 상대방에게 반응할 때 우리의 관계는 깊어지고 강화된다. 그리고 올바른 순간을 만들 수 있다면, 깊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스스로를 상대에게 먼저 조금 드러내고, 상대에게 공감하며 반응적 대화를 주고받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