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그라운드 제작 전 블루홀 상황 ㅠ.ㅠ>
1. 4년간 제작비 400억 원을 들인 PC게임 '테라(TERA)'의 기세는 출시 2주만에 접속자수 그래프가 하강 곡선을 거듭했다.
2. 출시하기만 하면 성공이 찾아올 줄 알았다. 성공은 언감생심, 제작 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지부터 의문이었다. '테라'는 기대보다 재미없는 게임이었다.
3. 몇 번의 업데이트가 이뤄졌지만 테라의 리텐션 수치는 줄곧 내리막이었다. 개발진과 경영진 속이 타들어갔다. 이게 말썽이다, 아니 이걸 바꿔야 한다, 으르렁대는 일이 잦아졌다.
4. 장병규 의장이 보기엔 사람마다 문제의 진단과 해법이 다른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조직이 한 방향을 바라봐야 의도한 성과가 나오는데, 지금 모두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며 (결국 장병규 의장은) 극약 처방을 내렸다.
5. 그간 테라를 이끌었던 공동 창업자이자 팀장(황철웅, 박현규, 김정한)들을 떼어 놓고, '중간 팀장'들을 모아 논의를 시작한 것. 장병규 의장은 중간 팀장 20여 명을 단상에 세운 후, 직원들과 함께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을 말하는 발표 행사를 상시적으로 열었다. 이른바 '포스트 모르템(post mortem)'.
6. '포스트 포르템'은 라틴어로 '죽음 후'란 뜻으로, 시체를 부검하듯 사고 이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일을 말한다.
7. 장병규 의장은 "지난 과거를 돌아보고 마음을 모아 같은 방향으로 달리자는 취지의 발표"라고 했지만, 일부 직원에겐 처방이 아니라 사약 같았다. 자기 반성이 아니라 자아 비판의 형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개발 리더들이 발표에 투입돼 개발 작업도 삐그덕거렸다.
8. 그럼에도 장병규 의장은 강경했다. 개발 역량이 정체되는 한이 있더라도 전략을 제대로 정비하겠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비상 상황이었다.
9. 와중에 블루홀을 지탱하는 한 축이었던 박용현 실장이 공식적으로 퇴사했다. 그는 장병규 의장과 함께 블루홀을 시작한 인물로, 테라 개발의 수장이었다. 2007년 블루홀 창업 당시 박용현 실장을 따라 이직해온 직원만 50여 명. 그가 물러난 뒤로 업계에선 그 이유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추측이 무성했다.
10. 몇 달 뒤 재무팀이 장병규 의장와 김강석 대표에게 회사의 위기 상황을 알렸다. 미국과 유럽에서 테라를 런칭해 현금 보유량은 일시적으로 늘어났지만, 전체 직원 260명 인건비는 감당할 수 없었다. 이 상태가 이어진다면 당장 2013년에 자금이 바닥나 회사가 망할 게 뻔했다.
11. 직원 260명의 20% 정도, 50~60명을 내보내야 블루홀이 살 수 있었다. 이사회는 감원을 결정했다. 장병규 의장 마음에 납덩이가 가라앉았다. "희망퇴직 제도를 준비해 주세요." 피플팀장 임재연에게 말했다.
12. 창업자들을 포함한 직군별 리더들에게 "남길 직원의 우선순위를 정해 제출해달라"고 부탁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일했던 직원의 이름을 제일 아래에 적었다. 충성심 높고 일 잘하는 경력자였지만, 연봉이 높았다. 참혹한 손으로 남은 칸에 이름들을 채웠다.
13. 장병규 의장는 황철웅, 김정한, 박현규를 포함한 직군별 리더들을 회의실에 불러모았다. 문을 걸어 잠갔다. 노란색 포스트잇마다 직원 이름이 적혔다. 포스트잇 260장을 직군별로 분류해 한쪽 벽에 모두 붙인 뒤, 꼭 있어야 할 사람, 그다음에 있어야 할 사람 등 남아야 할 순서를 정해달라고 했다.
14. 직군별 리더들이 이름 하나를 부르면, 포스트잇 한 장이 떼어졌다 다른 자리에 붙었다. 회의가 끝나자 블루홀 직원의 이름 260개가 한 줄로 세워졌다.
15. 이후 장병규 의장은 전사 발표를 열고 감원 계획을 밝혔다. '블루홀의 현황과 미래'를 주제로 회사의 사업과 재무 상황, 예상되는 재원 부족을 있는 그대로 공개했다.
16. 감원은 빠르게 끝나야 고통이 덜하다. 한 달 내에 구조 조정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장병규 의장 손엔 명단이 들려 있었다. 잔류 명단에 오른 사람들을 회의실로 불렀다. 100명 정도였다.
17. 한 달 새 많은 이들이 떠났다. 블루홀에게 2012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