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의 종말

그동안 우리에게 절대적 '시간'은 부유함과 가난함에 대한 차별 없이 그럭저럭 공평하다 평가되어 왔다. 누구나 한번 태어나서 유한한 시간을 거쳐 결국 죽음에 이르는 여정 속에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한국 부자 서열 1위이기도 했고 삼성 의료원이라는 의료 재단도 소유할 만큼 부족함 없는 최신 의료 혜택을 누리던 이건희 회장도 78세 - 남자의 평균 수명이 80.6세 - 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을 봐도 그 이야기가 아직은 유효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연스러운 현상으로만 바라봤던 노화를 얼마 전부터 질병으로 규정하고 치료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 2022년 1월 개정판에 노화를 질병으로 규정하는 문구가 추가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노인차별이나 부적절한 치료로 이어질 우려가 있어 그와 같은 표기가 무산되기도 할 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고 논란의 대상이기도 하다. <노화의 종말>을 쓴 하버드 의대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는 노화 예방의 다양한 방법을 책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의 책을 통해서 유명해진 항노화 성분 중의 하나인 NMN이 얼마 전 미국 FDA의 판매 금지 발표 또한 놀랄만한 사건 중에 하나인데 성분의 위험성으로 인해 금지된 것이 아닌 싱클레어 교수가 설립하였고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는 NMN 성분 제조사이자 신생 제약사인 메트로 인터내셔널 바이오테크(Metro International Biotech)에서 2021년 말 식이보충제 건강 및 교육법(DSHEA)에 관한 조항 - 식이 보충제와 경쟁하는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해 상당한 연구 노력을 투자한 회사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배제 조항 - 을 근거로 FDA에 판매 금지를 요청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최근 2022년 말에 판매 금지 결정이 내려졌다.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은 자신들의 연구 노력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 차원에서 아직 임상을 통한 검증이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효능을 입증할 수 있는 시점에 도달한 것은 아닌지 기대해 볼 수 있다. 다만 의약품으로 인정되어 앞으로 구매가 더 힘들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 항노화 성분 중에 면역력을 높여 노화 세포를 제거하는데 유효하다며 임상이 한창 진행 중인 성분 중 하나인 지금도 백혈병 치료제로 사용되는 다사티닙(Dasatinib)의 경우 의료보험이 적용되어도 70mg 한 알당 약 7만원 정도로 고가이다. 그러니 NMN도 만약 의약품으로 지정되면 터무니없어 보일 만큼의 가격으로 폭등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다사티닙의 경우는 2025년 2월에 특허가 만료되어 다양한 제조사에서 복제약으로 시판되기 시작하면 저렴하게 공급될 가능성이 다행히 열려 있다.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항노화의 산업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노화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계속되어 그 원인이 밝혀지고 나면 언젠가 젊음을 되돌릴 수 있는 시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로 인해 누구에게나 공평할 것만 같았던 '시간'마저 다른 모든 재화처럼 불균형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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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9일 오전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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