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가 말해주는 것은 개인의 성향보다도, 더 근본적인 어떤 욕망인 것 같습니다. 생각을 정리할 겸 한번 써봤는데요, 궁금하신 분은 한번 읽어보시고 의견 남겨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독 한국 사회에서 MBTI가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을까? 왜 특정 세대가 MBTI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날씨 대신 낯선 대화 주제의 왕좌를 차지한 MBTI의 군림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
"‘MBTI는 바뀌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들으셨나요? 고등학교 다닐 때 다들 MBTI를 한 번씩은 해보셨을 텐데, 1시간이 넘는 정밀한 검사 결과는 자신의 변하지 않는 성향을 진단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알벗님은 0000 맞으시죠?’
사실 MBTI에 한창 관심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에게 테스트 한번 해보라며 링크를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10년이 넘은 것 같다. 에니어그램과 MBTI를 조합하면 상당히 정확하게 누군가의 성향을 알 수 있다든지, MBTI의 두 번째 성향(N/S)은 같고 나머지는 모두 다른 사람과 가장 잘 맞는다던지, 꽤 파고들었던 것 같다.
모임에 나가면, 첫 만남의 자리에서 어김없이 MBTI에 대한 대화가 이어진다. 외향적이실 것 같은데 사실은 I라든지, 서로 MBTI를 맞추는 놀이, 성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비교해 보는 등, 대개 레파토리가 정해져 있다.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매우 높은 확률로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주제가 된 것 같다. 말하자면 ‘날씨’와 위상을 견줄 정도가 된 것이 아닐까. ‘오늘은 날씨가 좀 풀렸네요’는 좀 상투적이고 올드하게 느껴진다면, ‘MBTI 뭐에요?’라는 질문은 훨씬 더 젊고 힙하게 느껴진다. 문제는, 날씨는 매일 변화하기라도 하지만, 내 MBTI는 그렇게 자주 변하는 것이 아니어서, 참석하는 모임마다 1시간씩 같은 대화를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다른 대화를 원한다면 모임마다 MBTI를 바꿔서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MBTI가 과학적이거나 비과학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인간의 성격, 성향, 기질 등을 다양하게 분류해 데이터를 쌓은 과학적, 비과학적 체계는 정말 다양하고, 나름의 기능과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고백한 것처럼 필자도 에니어그램과 MBTI를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인간을 성향대로 구분해 체계적으로 탐구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에니어그램, MBTI, 스트렝스파인더, 혈액형, 사주 등 서로 비슷하지만 다른 사람을 구분해 삶에 함의를 얻고자 만들어진 지식체계는 항상 있었다. 이제는 인간의 지식 패러다임이 서구의 과학적 방법론에 주로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인간을 파악하고 분류해 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MBTI가 아니더라도 창업가, 임원, 직원을 1초 스캐닝해서 행동, 기질, 직무, 성과를 예측하거나 추천할 수 있다면,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조금 메타적으로 살펴보면, 인간의 ‘성향과학’ 또는 ‘성격이론’ 등이 말해주는 것은, 인간이 정립한 자기인식 지식의 과학성이나 유용성보다는, 오히려 ‘자기인식의 욕망’의 깊이와 그 저변에 깔린 ‘실존적인 불안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과학적 지식에 대한 질문을, 사회적인 것으로, 또는 철학적인 것으로 바꿔버릴 수 있는 것이다. 유독 한국 사회에서 MBTI가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을까? 왜 특정 세대가 MBTI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날씨 대신 낯선 대화 주제의 왕좌를 차지한 MBTI의 군림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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