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시작'이 지금보다 힘들었다. 예를 들어, 위워크에서 일을 하던 시절. 공유오피스에 출근을 한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 높은 천장, 내가 좋아하는 레몬워터, 조용한 분위기, 키감이 좋은 키보드. 크게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는, 어찌 보면 이상적인 컨디션.
그런데 시작하는 것이 힘들었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이 버젓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콘텐츠를 쓱 내려보는 데에만 시간을 쓴다거나. 괜히 커피나 다과만 반복해서 리필해 온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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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때 스스로에게 강제성을 더 부여해 버린다. 타이머를 맞춘다거나. 마감 일정과 벌금을 걸어버린다거나. 이 방식이 맞는 분들은 그렇게 하면 된다.
나는 조금 다른데, 계속해서 도피하는 나를, 지쳐버린 상태로 인식한다.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일에 집중할만한 신체/감정/뇌 수준의 에너지가 부족해서 이렇게 튕겨 나간다고 보는 편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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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지금 빠르게 해치워버리는 것이 맞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마감이 확실히 존재하기에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나 말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대체 자원도 없고. 그렇기에 지금의 내가 일을 피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일을 처리할만한 수준의 체력/여유 등이 확보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라는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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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덮고, 폰 뒤집어두고,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쉰다거나. 스트레칭을 한다거나. 두 손을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쥐었다 핀다거나. 내 컨디션, 인지하지 못하는 신체적 불편함을 하나씩 풀어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접근법으로 살아가다 보면 자책의 빈도가 줄어든다. 나는 왜 이것도 못하지? 나는 왜 열심히 하지 못하지? 등의 생각. 이는 독이 아닐까.
아픈 사람에게 왜 일어나서 헬스장에 가지 않냐고 묻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게으른 게 아니라 그냥 지친 게 아닐까. 라는 마인드가 오히려 더 효율을 높인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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